3월 초는 입학 시즌이다. 각급 학교에는 한 학년 올라간 학생들과 새내기 신입생들이 서로 와글와글거리며 계절의 봄보다 더 생기 발랄한 새 봄을 연다. 진부한 말이 됐지만 그래도 靑雲(청운)의 꿈은 언제나 교정의 아름다운 꽃이다.
그 꿈의 빗장을 여는 입학식은 다시없는 祝日(축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학교가 아니어도 배움의 시작은 그렇다. 올해도 입학식 현장의 화제는 뒤늦게 배움터를 찾은 老'壯年(노장년)들의 이야기다.
아들 셋을 키워 장가보내고 60넘어 공부를 시작한 69세의 울산 할머니. 할머니는 방송통신고교를 졸업하고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 "사별한 남편이 천국에서 '내 아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에선 63세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2세가 넘으면 입학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비공식 신입생으로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는 지난해에는 필기시험을 23번 치른 끝에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청주의 한 농업고교 입학식에는 60대 농부가 손자뻘인 신입생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또 청주의 한 아버지는 쌍둥이 아들과 함께 같은 대학에 입학, 삼부자 동문 동기가 됐고, 대전에서도 한 아버지가 아들과 같은 대학 신입생이 됐다.
늦깎이 신입생들의 사연들은 항상 흐뭇하고 교훈을 준다. 청운의 꿈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黃昏(황혼)의 꿈은 인생의 결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올 입학시즌 話題(화제) 중의 화제는 '맨발의 기봉이'다. 지난 2003년 '맨발의 기봉씨'라는 텔레비전 다큐로, 지난해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엄기봉 씨다. 44살인 기봉이가 강원도 철원군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앉은 그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기봉이는 충남 서산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농촌의 외딴 곳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집 하나, 거기에 사는 쇠약한 8순의 어머니와 40대 장애인 아들. 두 母子(모자)의 사는 모습은 어렵고 소외된 이 시대 불우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지극히 외롭고 불편한 삶이, 또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미래가 그러했다.
그런 기봉이가 동네 里長(이장)의 도움으로 마라톤을 배웠다. 그가 유명 선수가 돼서 돈을 벌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어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라톤에 입학함으로써 忍耐(인내)와 보람과 꿈을 발견한 것이다.
기봉이 모자는 텔레비전 방영과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을 것으로 소문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通帳(통장)에는 영화사에서 준 1천만 원과 성금 500여 만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지난해말 영화사에서 서산의 헌집을 헐고 아담한 새집을 짓고있는 와중에 모자는 철원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여동생이 사는 곳으로 홀연히 떠나간 것이다. 좋은 집이나 남의 도움보다 의지할 혈육이 더 소망스러웠던 듯하다. 그곳에서 정신연령 8세인 기봉이는 신나는 1학년이다.
특별한 신입생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제때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많고, 늦었지만 배우려는 意志(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으론 많이 배운 사람들 가운데 배움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배움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다.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까지 못가더라도 나이 먹어 챙기는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만으로도 배움의 가치는 무량하다. 신입생들의 邪心(사심)없는 마음이 소중한 시대다.
金才烈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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