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사람은 그 '아는 힘'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동물을 부렸으며, 그 '아는 힘'으로 전기와 동력을 발견하고 자연을 이용해왔다. 산업혁명은 물론 현대의 '찬란한' 전자문명 또한 그 '아는 힘' 덕분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지식 혹은 과학이라 부른다. 지식이나 과학은 우리에게 사물을 명료하게 보는 눈을 선사해 주었다. 덕분에 나노에서 천체에 이르기까지 사물을 향한 인간의 눈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밝은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생명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다. 나라마다 대학마다 수백가지 분과 학문이 있고 그 전공자들이 있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학문과 학자는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나 삶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며 기적'이므로. 다원적이며 다층적인 생명의 세계는 결코 자연과학적 물리법칙으로 설명되거나 환원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과학은 신비를 '무지'라 하고 생명을 언젠가는 밝혀질 수 있는 지식의 하나로 취급한다. 여기에 지식의 오만함과 폭력성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명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우리의 정신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것들은 결코 지식에 의해 포획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인식은 '무언가를 포함시키기 위해 항상 무언가를 제외'해야 하므로. 그러고 보면 인간의 지식은 '모름'의 대양 속에서 잠시 튀어나온 몇 개의 물방울 같은 게 아닐까? 우리는 그 몇 개의 물방울을 쪼개고 분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주느라 대양의 존재를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함을,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지식의 불완전함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을 비평하고 있지만 현대과학의 물질주의와 환원주의, 기계론적 사고를 비판한다. 나아가 이러한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현대 산업문명의 폭력성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까지 담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뿐 아니라 삶의 구체성으로부터 멀어진 다른 모든 학문과 종교 예술 등이 편협한 '전문가'에서 벗어나 서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과학은 모래 한알을 쪼개고 분류하여 최소단위로 환원시킬 뿐, 이처럼 모래알 하나가 도약하여 세계가 되고 들꽃 한송이에서 천국을 보아내지는 못한다.
생명은, 그리고 우주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며 그래서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생명의 푸른 나무'는 가지 따로 잎 따로 뿌리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보면 수많은 다양한 것들이 아름다운 하나로 보이듯, 삶을 고양시키며 우리를 통합하게 하는 것은 사물 너머를 볼 수 있는 또다른 눈을 가졌을 때야 가능할 것 같다. 예컨대 통합은 결코 물질성에 포획된 '아래층'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이제 그 힘이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힘이 되면 좋겠다. 우리 각자가 뿌리내린 그곳에서 마침내 공감과 사랑과 연대를 통해 다 함께 도약할 수 있도록.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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