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명록에 대한 궁금증

▲방명록에는 그 장소가 주는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성로의 한 분식집 벽에 붙은 수 많은 메모지들에는 톡톡튀는 젊음이 묻어났고,

바람흔적 미술관 방명록에는 건조한 마음에 산들거리는 바람 한 줄기를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보현산 천문대에 오르면 별빛의 마음이 가득 들어찬다. 별이 빛나는 관람자료들 덕분일까? 아니면 올라오는 길에 정각 별빛 마을 곳곳에 붙은 '별빛'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박혀서일까? '신비롭고 경이롭다'는 단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사진 속에 별 보고 소원 빌어도 될까요?'라는 어린 학생의 재미있는 글도 눈에 들어왔다.

대구 중앙로에 있는 카페 '쟁이'는 10~20대의 젊은이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곳이라선지 이 곳의 방명록 '흔적'에는 유독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들이 가득했다. 또 차 향기 가득한 백년찻집의 방명록에는 차가 주는 여유로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잠시 상념에 잠겨든 사람들의 삶과 사랑이 노트 가득 적혀 있다.

▲방명록은 시대에 따라 그 내용도 조금은 변화 했다.

백년찻집 문을 연지가 9년, 찻집을 운영한지는 벌써 17년이 된다는 이영숙 사장은 "옛날에는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한 글들이 많아 손님이 없을 때 한번씩 들춰보곤 했지만 요즘 방명록은 거의 신변잡기적인 글이거나 낙서수준이어서 넘겨보지 않은지가 꽤 됐다."고 했다.

사실 방명록을 뒤적여 보면 낙서가 꽤나 많다. 만화 캐릭터를 그린 그림에서부터 오목두기 놀이를 한 흔적, 이름으로 서로의 호감도를 알아보는 숫자점 놀이를 한 흔적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그래서 '바람흔적 미술관'에서는 아예 방명록을 북아트 작품으로 바꿔버렸다. 가죽 자켓에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는 이 곳의 방명록은 북아티스트 박한이 씨의 작품으로 고운 한지를 엮어 만든 것. 정미선 관장은 "깨끗한 모습을 한 장소에서는 사람들의 행동까지도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처럼, 기존의 스프링 노트에는 낙서들로만 가득했지만 북아트 방명록으로 바꾸고 난 뒤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좀 더 정성스럽게 한자 한자 써 내려가는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그럼 이런 방명록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어떻게 보관될까?

공공기관의 성격을 가진 곳에서는 대부분 관람객들의 숫자를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따로이 방문객의 숫자를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으니 방명록에 적혀진 수를 가지고 대략의 수를 추산해보는 것이다.

보현산 천문대 관계자는 "방명록을 통해 추산한 천문대의 월 평균 방문자는 약 2천여명 선"이라며 "관람객 수 파악 외에도 건의사항 등을 통해 시설과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참고자료로 쓰고 있다."고 했다. 경북대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는 박물관에서도 같은 용도로 방명록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사적으로 운영되는 시설들의 방명록은 그냥 주인장의 '기념품'과도 같은 개념이다. 바람흔적 미술관의 정 관장은 "글 하나하나가 작품 같아서 늙어서까지 보물로 소장하고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백년찻집의 이영숙 사장은 "지금껏 찻집을 운영하며 모은 3천여권의 방명록에서 좋은 글들만 모아 나중에 책으로 엮어볼 생각도 있다."고 했다.

▲ 옛 기록을 다시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간혹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와 그 날의 흔적들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간간히 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트인데다, 그 수가 많다보니 꼭 집어 찾는 일은 그리 수월치가 않다. 그래서 10년의 역사를 가진 '쟁이'에서는 해가 바뀔때마다 1번부터 번호를 매겨놓는다. 최석연 사장은 "추억을 찾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며 "자신이 글을 쓴 '흔적'의 번호와 년도를 알고 있다면 한층 찾아주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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