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방명록. 미술관이나 카페, 여행지 등에서 저와 한번쯤은 만난적이 있으시겠지요.
저는 추억을 담는 도구랍니다. 그 날, 그 장소를 찾았던 수 많은 사람들의 사연과 기분까지도 저는 낱낱히 알고 있지요. 다들 쉽게 드러내 놓지 못하는 속마음, 하지만 누군가에겐 말하고 싶은 그 이야기들을 저에게는 살짝 털어놓거든요. 이건 아마 제가 가지는 익명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몸을 빌려 누군가에게 사연을 전하고 싶어 이름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니셜과 싸인 등으로 혹은 익명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곤 하더라고요.
과거 인터넷이라는 것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제 활동무대가 굉장히 넓었지만 요즘은 잊혀져가는 물건 중 하나가 됐답니다. 사람들이 이젠 글을 쓰는 것보다 컴퓨터 타자를 두드리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요?
특히 학교에서는 절 잊은지 오래입니다. 보통 대학생들이 머무는 과방에는 학생들의 생활과 고민, 친구들에 대한 우정과 안부인사 가득한 방명록이 필수였지만 요즘은 잘 쓰질 않더라고요. 다들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통화를 하고, 인터넷 등으로 이야길 주고 받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충실히 들어주고, 그 추억을 간직해 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니까요. 이야기해 보세요, 당신의 속마음을. 저는 언제든지 들어들릴 준비가 돼 있다니까요.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그대에게
초가 흘러내린 시간 만큼 함께 할 수 있으면
초가 흘러내린 양 만큼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초가 흘러내린 길이 만큼 길게 같은 길을 갈 수 있으면
초가 꺼지는 그 순간가지 같이 있을 수 있으면….
(백년차)
책 한권을 샀다. 무수히 많은 글자들 속에서 묻혀있다보면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수다떨며 웃다보면 지울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책상정리를 했다. 쓸데없이 모아두었던 짐을 정리하다보면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버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잊을수도, 지울수도, 버릴수도 없이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 흔적으로 상처의 못자리로 남아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이라고 했던가요? 그래서인지 제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사연들이 사랑에 관한 것들이랍니다. 말로 하긴 쑥스러운 사랑 고백을 제 몸을 빌려 대신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연인이 함께 글을 써 내려가며 '앞으론 더욱 사랑하자'며 알수 없는 앞날을 기약해보기도 합니다. 미련한 사랑에 애태우고 있는 짝사랑 고백도 자주 보는 레퍼토리죠. 이렇게 어렵사리 마음을 내 보인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요? 행복하게 연인과 미소짓고 있을까요? 아니면 서로 돌아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을까요?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답니다.
혼자 저를 찾아와 둘이 함께 썼던 방명록을 뒤적이며 떠나버린 사랑에 눈물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럴때는 참 난감하죠.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등이라도 한번 쓸어주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새하얀 종이 한장 빌려주는 것 뿐인걸요.
그렇다고 사랑을 고백이 연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랍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 새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 장인'장모와 함께 찾아와 평소에 말로 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글로 표현해내는 사위의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답니다.
사랑, 사랑…. 도대체 진짜 사랑은 뭘까요?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의 이야길 듣는 저이지만 저조차도 무엇이 사랑인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여유를 만끽하며
국화향에 내 몸을 녹이니 그 맛 또한 나의 마음을 녹이도다.
임에게 안긴 포근함보다 국화향이 나를 더욱 포근하게 만드는구나.
왜 사냐고 물으면 국화향에 그냥 웃지요.
풍경에 여운은 삶의 고요다.
(2006.5.20)
오랜만에 따뜻한 곳에 왔다.
편안한 마음 한자락에 살며시 고개를 드는 불안한 마음은 뭔지….
생각하지 말자.
좋은 사람, 좋은 경치, 따뜻한 차 한잔에 예쁜 추억만 담아야지.
나를 가두는 힘든 마음은 꺼내지 말자.
웃고 있으면 내 마음에 긍정적인 샘물만 고이겠지. 하자, 그래!
가끔 삶에는 휴식이 필요하지요. 사람들은 가끔 저를 찾아와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방명록이 있는 곳들이 시외의 한적한 찻집,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또 하얀 종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도 텅 비는 것 같은 여유도 있을테구요.
이럴 때 보면 사람은 누구나가 시인인 것만 같습니다. 꼭 아름다운 시어를 써야만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짧은 몇 줄의 글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진심을 담아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멋들어진 시가 되는 것 아닐까요? 차 향기에 취하고, 술한잔에 취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취해 써 내려간 글들. 요즘 사람들은 점점 각박해져 간다고들 하던데 제게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꼭 그런것 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시가 살아 숨쉬니까요.
아, 가끔은 오목을 두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카페 주인들은 이런 낙서들을 보며 한숨을 내 쉬지만 전 이것도 굳이 나쁘진 않다고 생각되네요. 여유를 잃은 사람들, 저를 통해 잠시 쉬어간다면 그걸로 전 충분하니까요.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들
내 감정을 몰라서 헤매는 혼란스런 스물둘의 나날들.
곧 변하는 거 없이 스물셋이 되겠지.
그리고는 어른이 되나?
하하~ 씁쓸하고 슬프다. 알수없는 것들에 대한 쌉싸름함.
이젠 좀더 나은- 나를 위해 살고 있는 담백한 일상이 되길.
(PEACE 2006.11.10)
세상이 만만한가? 21세기는 보다 투명한 사회이다.
성실이란 밭에 유능이란 씨를 뿌려야 성공한다.
살아남기 위해 짓밟아야 한다.
올라가기 위해 끌어내려야만 한다.
조그만 다윗의 돌에 돌팔매에 쓰러질,
힘없이 무너질 미련한 덩치를 가진 골리앗이 그대이진 않은가?
마치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mumble...humble...steady mumbel
젊은 날에는 무엇 하나 완전한 것이 없지요. 불안한 미래와 아직 채 영글지 않은 마음들이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말야…"라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이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지만, 그래도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려 제게 다짐같은 글들을 쏟아내 놓기도 하고, 알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의 실마리를 찾으려 이것저것 써 내려가지요.
간절히 소망하면 기대만큼 이뤄진다고 하던가요? 전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밖에 못하지만 글로 표현된 이런 젊은 날의 간절한 소망과 희망들이 분명히 이뤄질 날이 올 거라고 전 믿어요. 화이팅!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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