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클리닉 에세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손자의 손을 잡고 들어오시는 할머니는 먼저 손자의 증상을 찬찬히 설명하고 진찰을 받는 손자의 얼굴을 걱정 어린 눈으로 보시다가 진찰이 끝나면 진찰대로 와서 손자와 자리를 바꿔 앉는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환자가 되고 손자는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가끔씩 끼어드는 손자의 할머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소아과 환자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향해 아이가 한소리 한다. "우리 할머니 주사 한 대 주세요."

소아과 진료실에는 항상 어린 아이들만 진료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태어나 첫울음을 세상에 선보인지 불과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신생아부터 환갑, 진갑을 지내신 걸음걸이가 다소 느린 어르신까지 60~70년을 건너뛰어 진료를 하게 된다. 아직은 자신의 증상을 직접 전달하기 힘든 아이들은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진료를 받게 되고 청진기나 설압자가 자신의 몸에 닿기만 해도 큰 울음을 터뜨린다. 물론 진찰을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집에 있는 장난감 청진기로 연습(?)해온 아이들은 순간 자신이 의사가 되는 것이다.

소아과 진료실인 나의 방을 찾으시는 어르신들은 다양한 경로로 나의 환자가 된다. 손주의 진찰을 위해 찾아왔다가 나와의 첫 경험(?) 후 자주 찾게 되는 경우가 있고, 야간진료를 하는 병원인 관계로 급하게 왔다가 습관적으로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가끔은 옆 건물의 내과를 찾아 왔다가 잘못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어찌되었던 나의 진료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는 순간 나의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나의 진료실을 찾았지만 환자는 환자이고 그들의 나이는 숫자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속담처럼 나의 진찰실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미소와 함께 주사도 무서워하는 그냥 그런 나의 환자가 되는 것이다.

김대훈 (미래연합소아청소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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