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똑 부러진 주관, 자신감 가득한 대안학교 아이들

대구시 동구 덕곡동 팔공산 자락에 자리잡은 달구벌고등학교를 찾았다. 지난 2004년 3월 개교한 대안학교. 대안학교에 대한 첫인상, 아니 엄밀히 말해 선입견 중 가장 큰 부분은 '사회 부적응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흔히 말하는 제도권 교육에 편입되지 못한, 어쩌면 심각한 좌절과 무기력증에 시달렸던 아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좀처럼 떠나지 않는 선입견을 잠시 밀쳐두고 학생들을 만나기로 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교정 곳곳에서 인사말이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낯선 사람의 등장을 대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생경스럽다. 마치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멀리서 아이들과 농구를 하던 한 선생님이 "매일신문에서 오셨어요?"라며 다가와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어제 전화 받고 아이들 몇 명에게 이야기해 두었으니까 만나서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역시 낯선 반응.

대개 학교를 찾아가면 교무실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교장을 만나 인사하고, 교사가 함께 한 자리에서 학생들을 취재하는게 통례였다. 낯설다못해 살짝 기분이 상하려는 찰나 한 학생이 다가와 "2층으로 가시죠."라고 웃어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교장 선생님 한번 만나보시겠어요?"라고 묻는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이 외부 사람을 교장에게 안내할 정도로 자유스러운가? 조금은 당혹스런 느낌이었다. 일단 인터뷰부터 하자는 기자의 말에 학생은 "그러시죠."라며 싱긋 웃고 만다. 늘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모습이다.

3학년이 되는 임나래(19) 양과 조은재(19) 군, 2학년이 되는 박한비(18) 양을 만났다. 앞서 생글생글 웃으며 안내를 맡은 이가 바로 은재였다. 나래와 은재는 대구, 한비는 경남 고성이 고향이다. 나래는 음악프로그램 제작자, 은재는 선교 음악가, 한비는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했다. '냅둬요 증후군'에 대해 설명한 뒤 부모님과의 갈등은 없었는지 물었다. 3명 모두 이곳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온라인게임 대회를 보기 위해 2박3일 서울에 몰래 다녀왔다는 나래는 "지금도 부모님과 진로 문제 때문에 많이 다툰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집에 찾아갈 때마다 전한다고 했다. 이곳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말이면 원하는 사람은 집에 다녀올 수 있다. 은재도 힘든 적이 많았다고 했다. 한때 자퇴를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3학년까지 올라왔고, 실용음악과 진학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비는 부모님의 권유로 이곳에 왔다. 자유분방한 한비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귀고리에 매니큐어까지 칠한 모습.

조금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비는 자기 주장이 뚜렷했다. "일반 학교에 진학했어도 그럭저럭 적응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생각이 커지고 남을 이해하는 저로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곳에서는 교과목을 선택하고, 수업을 들어가는 것까지도 학생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책임이 따르게 되죠."

"오늘은 3학년 전체 회식이 있는 날입니다. 고기뷔페에 가기로 했어요. 행사 신청서를 내면 학교에서 지원해줍니다. 학교카드를 주는데 정해진 금액만큼 쓰면 됩니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는 은재의 말이다. "얼마 전 첫 졸업식이 있었는데 모두 울었어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언니, 오빠처럼 지냈거든요. 미웠던 사람도 있었지만 더 이상 밉지가 않더군요."

한비는 3학년이 졸업하자 학교가 썰렁해졌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도 내신성적도 있고, 석차도 다 공개돼요. 스트레스도 있죠. 하지만 각자 진로가 다른만큼 공부가 전부는 아니죠." 나래가 똑부러지게 말했다. 이곳 아이들은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말할 때 가만히 들어주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 마치 자기주관이 뚜렷한 대학생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느낌이 들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