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둬요 증후군'은 일반적인 청소년 무기력증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무기력증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봐야한다. '냅둬요'라고 외치는 아이들 중 일부는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생활하는 무기력 증세를 보이지만 상당수는 부모나 학교의 기대에 어느 정도 맞춰서 생활하고 있다. '냅둬요 증후군'은 이런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겉으로 아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증세를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저 공부가 힘들어서, 사춘기여서 으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상 잔잔하기만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탈의 충동과 기대에 맞춘 생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짜증을 잘 내고 아무런 의지나 꿈도 없다며 청소년상담센터를 찾은 한 어머니. "어릴 때부터 아이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줬어요. 오히려 남에게 뒤질새라 알아서 더 챙겨줬지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변하더니 중학생이 되서는 도무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아요. 말만 걸면 짜증부터 냅니다. 아빠가 엄하기 때문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지만 저랑 둘이만 있을 때엔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냅둬요 증후군'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과잉보호 또는 과잉기대. "아빠나 엄마는 저에게 잘했다고 칭찬한 적이 없어요. 반에서 20등 하면 10등 안에 들라고 하고, 10등 안에 들면 5등 안에 들라고 재촉해요. 기껏 아빠, 엄마 욕심을 들어줬더니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좀 더 열심히 해라'는 것 뿐이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하기 싫어졌어요." 아이는 칭찬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석차가 오른 성적표를 내밀었더니 부모는 '잘했는데,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아이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다시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동시에 일탈 충동을 경험하게 된다.
성적만이 문제는 아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하고, 말썽 피우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데 부모는 좀더 두드러지고 우수한 아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만 해도 과학자, 발명가, 무용수, 화가를 꿈꾸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꿈을 잃어버린다. "일단 공부부터 열심히 해야 꿈도 이룰 수 있지. 이웃집 네 친구는 반에서 3등 했다던데." 부모의 이 한마디에 아이들은 좌절하고 도피처를 찾게 된다. 그 도피처가 바로 '적당히 되는대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딱히 아쉬운 것도 없다. 가정 형편도 어렵지 않고, 굳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바 '출세'하겠다는 욕망도 없어진다. 당연히 공부에 대한, 삶에 대한 동기 부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일탈 충동과 자기 억제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외부 압력, 즉 부모의 기대가 커지면 균형을 잃고 일탈로 접어든다. 일탈은 가출이나 폭력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 중독이나 은둔형 외톨이로 빠져든다.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채 자신만의 세계로 점점 잦아들게 되고, 급기야 아무런 방해도 없는 사이버 세계 속에서 허우적대는 삶이 돼 버린다.
대구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채연희 상담지원팀장은 "겉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 때문에 '냅둬요 증후군'으로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편"이라며 "결국 부모의 기대치를 낮추고, 획일화된 기준으로 자녀를 평가하지 않는게 중요하며, 무엇보다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자녀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냅둬요 증후군' 상태에서는 문제를 깨닫지 못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치고, 인터넷 중독이나 은둔형 외톨이 상태가 되면 문제가 드러나도 아예 아이가 상담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는 오는 20일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 발대식을 갖는다. 방문 상담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상담자가 직접 찾아가 도움을 주는 서비스. 관련 분야 전문가 15명으로 '청소년 동반자'가 꾸려졌다. 국번없이 '1388'을 눌러 청소년동반자 담당자를 찾으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대선 출마하나 "트럼프 상대 할 사람 나밖에 없다"
나경원 "'계엄해제 표결 불참'은 민주당 지지자들 탓…국회 포위했다"
홍준표, 尹에게 朴처럼 된다 이미 경고…"대구시장 그만두고 돕겠다"
언론이 감춘 진실…수상한 헌재 Vs. 민주당 국헌문란 [석민의News픽]
"한동훈 사살" 제보 받았다던 김어준…결국 경찰 고발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