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민가에서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산으로 들로 나가 여러 가지 나물부터 가르쳤다. 먹는 나물만 알아도 먹을거리 걱정은 덜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나물을 소재로 한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하찮은 재료로 만들어진 '개떡'은 늘 먹을 것에 굶주린 우리들에게 멋진 간식거리였다. 보리개떡, 쑥개떡.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개떡이야기. 어른이 되어서는 개떡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 갈듯 하다.
"인심은 묵는데서 나는 기라. 얼릉 한 바퀴 댕기 오이라."
할머니가 뒷산에서 쑥을 캐 오셨다. 쑥개떡으로 한바탕 동네잔치(?)를 벌릴 모양이었다.
쑥개떡을 넣은 소쿠리를 들고 상천아지매, 상할매, 김센할매(김선생네 할머니) 댁을 돌아와야 한다.
"김센할매~" 사립문 앞에서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빨리 심부름 마치고 개떡 먹으러 가야 되는데…. 뒷간에서 비쩍 마르고 젖꼭지가 늘어진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짖지도 않는 걸 보니 순해 보였다. 급한 마음에 앞뒤 없이 쪽마루에 개떡을 놓으러 가는 순간, 순해 보이던 개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기겁을 하고 놀라 뒷걸음질치다가 소쿠리채로 넘어지고 말았다. 겉으로만 순한 개는 바로 코앞에서 으르렁거렸다. 겁에 질려 울음보가 터졌다.
"아이고, 아가야? 와 그라노?" 부엌에서 뛰쳐나온 김센할매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디 안 물맀나? 이노무 개새끼가 미쳤는갑다. 심바람 온 아를 와 물라카노."
김센할매는 빗자루를 들고 개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겁에 질린 개는 쏜살같이 마루 밑으로 도망쳤다.
"괘안나? 안물맀제? 아이고 근데 이 개떡 아까바서 우야노?" 흙 묻은 개떡이 아무렇게나 마당을 뒹굴었다. 두 사람은 개떡을 하나씩 집어 들고는 우물가에서 다시 씻어 먹은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개 때문에 개떡이 우습게 된 꼴이었다.
쑥개떡은 쑥과 쌀가루를 말랑말랑하게 반죽해서 애들 손바닥만하게 동글납작한 크기로 만들어 김이 오른 찜 솥이나 가마솥에 밥할 때 베보자기를 깔고 5분정도 찌면 금세 떡이 되었다. 그 위에다 강낭콩을 몇 개 얹으면 정말 먹음직스런 쑥개떡이 만들어졌다.
또 보리개떡도 좋은 간식거리였다. 보리방아를 찧고 나면 껍질과 알곡이 섞인 가루가 나오는데 그것을 "보리등겨" 혹은 "보리 싸라기"라 했다. 사투리로는 "보리딩기"라고도 했다. 부잣집 사람들은 그걸 쓸어가서는 돼지 사료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궁핍한 사람들은 돼지한테 줄 보리등겨조차도 없었다. 빗자루로 대충 쓸어 반죽을 해서는 보리개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빗자루로 등겨를 쓸어 담다보니 보리개떡 속엔 꼭 모래가 씹혔다. 어쩌면 모래없는 보리개떡은 보리개떡 맛이 안 날지도 모른다.
보리개떡은 한 집안의 어머니가 부지런해야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밥풀 묻은 보리개떡 서너 개를 들고 놀이터로 가면 그 보리개떡 한 입 얻어먹으려고 아부와 협박이 난무하고 결국엔 줄서고 배급타는 분위기가 되었다. 평소에 삐딱했던 아이들에겐 치사하리만치 손톱만큼 떼어주던 보리개떡.
멍멍이 개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떡은 예로부터 진짜가 아닌 가짜, 함부로 되거나 좋은 것이 아닌 것에다 접두사 "개"를 붙였다. 개나리, 개망초, 개꿈, 개머루 같은 것들이다.
반면에 좋은 것과 귀한 것은 "진"이나 "참"을 붙여 "개"와 구분을 했다. 달래라도 참 달래를 진달래 혹은 참꽃이라 했고 나리 중에서도 가장 예쁜 나리를 참나리라 했다.
베이킹파우더에 흰설탕, 수입 밀가루 팍팍 섞어 색깔 좋은 브레드(빵) 보다는 볼품없는 보리개떡이나 쑥개떡이 더 좋다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보리개떡 체험을 하려면 영덕군 창수면 '나라골 보리마을'을 찾으면 된다. 보리짚풀공예(보리피리, 여치집), 보리개떡 만들기, 일출보기, 해수욕, 고기잡이, 소달구지 타기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8성씨 12종택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종택 탐방 등을 통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narabori.go2vil.org (011-441-6075)
또한 양과 음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진 울진군 온정면 '양떡마을 음떡마을'에서는 양떡인 쇠머리떡과 음떡인 숙절편을 맛보는 특별한 떡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ddukmaul.go2vil.org 054)787-7689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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