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둘이서 함께 가는 아다지오

얼마전 신문사를 방문한 한 여성 첼리스트가 책 한 권을 주고 갔다. 정신과 의사이자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음악칼럼니스트가 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이라는 책. 천편일률적인 악곡 해설이 아닌, 클래식에 남다른 조예를 가진 저자가 전세계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쌓은 경험과 음악가들의 예술적인 일화를 그린 것이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그동안 건성으로 알고 있었던 명곡들을 새로운 깊이로 이해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첼리스트 자신과 러시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니나 코간(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트 코간의 딸)이 협연한 '러시아 로망스'(푸시킨의 연가) 이야기도 담긴 이 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마다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이 책 속에 가득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남긴 대목이 '둘이서 함께 가는 아다지오'였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그에 따른 사연들이 그랬다.

모차르트가 스물셋에 파리에서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지은 이 곡을 통해 저자는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의 지극히 이기적인 삶을 꾸짖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의 청량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제2악장 아다지오는 비교적 밝고 빠른 모차르트의 다른 곡들에 비해 어둡고 느린 것이어서 더욱 애잔하다. 더구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연인을 기어이 아내로 맞아들여 삶을 함께해온 어느 일본인 음악애호가의 일화와, 아들을 위해 자신의 뛰어난 재능도 늘 뒤로 물려두는 한 러시아 음악가의 부정(父情) 때문일까.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빚어내는 멜로디가 어찌 이리도 가슴 저리는지....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선율이 때로는 활기를, 때로는 우수를 안겨준다. 다정한 사람끼리 서로 손을 잡고 조용히 숲길을 걸어가듯,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그렇게 서로 어르고 달래며 멋진 화음을 연출한다.

1963년에 녹음된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와 그의 아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연주는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음악 이상의 감동'을 담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옛 소련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연주를 할 때면 늘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주고 자신은 비올라를 맡는다. '둘이서 함께 가는 아다지오'는 저마다 화려한 독주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조연'의 애틋한 가치를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출간된 뉴욕의 액자전문가 W.H.베일리가 쓴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란 책도 '주연보다 아름다운 조연'의 이야기다.

"액자 디자인에 앞서 그림의 핵심을 찾아내기 위해 화가의 붓놀림을 손가락 끝으로 쫓으며 매일 밤 그림 속을 헤맨다"는 베일리의 고백을 통해 독자들은 그저 그림의 부수적인 존재로만 인식했던 액자의 새로운 가치를 깨달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조연이 없으면 주연도 없다. 야구 투수의 노히트노런 기록 뒤에는 조연인 포수의 노력이 숨어있고, 추임새로 흥을 돋우는 고수의 역할이 없으면 판소리의 그 맛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지난 6일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 '주몽'에서 '모팔모'역을 맡았던 이계인처럼 조연이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켜 놓기도 한다.

생물의 존재방식에서도 '공생관계'라는 것이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 서로 이익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관계를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하물며 우리 인간세상의 삶이란.... 혹여 내가 턱없이 '주연'을 빙자하며 타인의 삶에 '편리공생'을 하고 있거나, 딱새의 둥지에 무임승차해 번식을 하는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는 남들간에는 차치하고라도, 연인과 부부간이나 오랜 친구와 부모 자식간에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끼리라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둘이서 함께 가는 아다지오'가 그리운 봄날이다.

조향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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