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은 가벼운 등산객들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다. 그 등산로에서 좀 떨어진 평평한 공터에서 한 무리 대학생들이 모여 이른바 신고식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야산 아래 대학의 학교 신문기자들이었다. 선배 기자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유격대 조교처럼 행세했다. 원산폭격을 하는 학생, 어깨동무하고 토끼뜀하는 학생, 고래고래 복창하는 학생 등. 이를 본 등산객들은 모두 혀를 찼다.
◇가까이 가서 지켜보니 기가 막혔다. 초대 편집국장부터 학보사를 거쳐간 선배 기자들의 이름과 직함을 빠짐없이 외워 복창하는 것이 신입 기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학보사 역사가 30년이 다됐으니, 수백 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대부분 증조할아버지 이름조차 모르고 자란 애들일 텐데…. 원산폭격하면서, 토끼뜀하면서, 군가식 노래를 악을 써서 부르면서 외고 또 외워야 했다.
◇학보사 기자로 들어간 이들 새내기들은 이것만 당했을까. 입학을 전후해서 공식 비공식 모임에서 어떤 핑계로든 학과 선배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한 번 이상 당했을 것이다. 학보사 들어가서 당하고, 중'고교 동문회에서, 또 가입한 동아리에서 몽둥이 찜질을 당하거나 지독한 기합을 받거나 아니면 살인적 음주를 강요당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모든 신입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들 학보사 신입 기자들만 당한 것도 아니다.
◇입학철 가혹행위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보도되고 있다. 당하다가 숨지거나 다친 학생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신고식 모습들이 보도되고 있다. 한 일간지에 보도된 전북 모 대학의 대로변 팬티차림 신고식은 거의 몬도가네 수준이다. 민주화를 이룬 나라에서 이런 악행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해외 토픽 감이다.
◇신고식을 빙자한 신입생에 대한 가혹행위는 변명의 여지없는 폭력 그 자체다. 초교에서 중등, 그리고 대학까지 학원이 온통 폭력으로 얼룩져서야 이들이 만들어갈 차세대의 모양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386세대의 민주화에 기여한 힘이 대학 폭력에서 나왔다? 그래서 방치하는 게 아니라면, 정부와 대학은 이제 학교 폭력에 단호해야 한다. 폭력배는 법으로 다스려야 하고, 이를 방조하거나 외면한 선생님이 있다면 교단에서 추방해야 한다.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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