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그녀가 남긴 봄의 상흔

내 봄날의 기억이 가슴을 덮친다.

같은 병을 앓고 있지만, 환부가 서로 다른 두 친구와 함께 강릉에서 서울행 통일호 야간열차에 올랐다. 등받이와 등받이 사이에 신문지를 깔고 누웠다. 자갈밭 같은 청춘의 나날이 무작정 덜컹거렸다. 열차는 먹물 같은 시간 속을 달려나갔다.

아침이 되자 친구 하나가 선반에서 기어 내려왔다. 그의 하중을 이겨낸 선반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새벽녘까지 마신 술을 화장실에서 꽥꽥거리며 토해냈다. 역사를 지나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매캐한 서울 공기가 달려들며 인사했고, 배고픈 청춘을 이미 알아본 유곽 아줌마들이 팔목을 잡아끌기도 했다.

춘정을 달래며 종로로 향했다. 당당하게 코아아트홀 조조할인 티켓을 끊었다. 시뻘건 눈의 이방인 셋은 영화 '블루'(Trois Couleurs Bleu)를 봤다. 변방의 기억을 모두 벗고 임종환의 레게(reggae) 음악이 울려 퍼지는 종로통을 싸돌아다녔다. 처음엔 그냥 걸었다.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옛 생각이 나기도 했다.

두 친구와 함께 서로 다른 서울의 기억을 안고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의자를 마주보게 해놓고 주저앉았다. '저 빈자리에 누가 앉을까?' 궁금했다. 그 의문에 혼자 여행가는 여자가 화답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강릉까지요." 그녀는 우리보다 두 살 많았다. 셋의 여행에 또 다른 하나가 동참한 것이다.

흔들리며 기울이던 맥주에 모두 흠뻑 취했다. 주사 심한 친구 하나가 벌떡 일어나 오줌을 눈다며 객실 안에서 지퍼를 내리려고 할 정도였다. 강릉에 내리자 차고 맹맹한 공기가 덜컥 가슴에 와 안겼다. 우리들은 그녀와 함께 온종일 바닷가에서 놀았다.

그날 밤, 후줄근한 내 방은 두 명의 놈팡이와 한 명의 서울 아가씨를 받았다. 밤늦도록 음악을 듣고 술을 마셨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서로의 속내를 내비쳤다. 여자는 애인과 헤어진 후, 홀로 여행을 가던 중 우리를 만났다고 말했다.

새벽녘에 이불을 깔고 모두 누웠다. 그러나 우리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튿날 그녀가 떠났다. 그녀는 떠나며 명함 한 장을 남겼다. 친구 하나는 그녀가 떠난 날 밤, 학교 솔밭이 떠나가도록 바보같이 울었다.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주고 간 명함을 들고 아무도 모르게 홀로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충무로에서 일하는 그녀의 직장으로 수없이 전화를 했다. 보고 싶다고, 만나달라고, 멀리 강릉에서 올라왔다고…. 처절하게 애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다."는 대답만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기다린다고 했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의 매연을 모두 마시며 돌부처처럼 담배만 죽이며 서 있었다. 마비될 지경의 다리를 질질 끌며 다시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역 광장에서 마음씨 좋은 아줌마(?)를 따라가 홍등 아래 스러졌다. 얄궂은 비웃음만 덮어쓰고 나왔다.

쓸쓸하게 강릉행 열차에 올랐다. 넷이었던 그날의 승객은 하나로 줄었다. 솔밭에서 울던 친구처럼 열차 난간에 기대어 꺽꺽 소리 내어 울었다. 기억에 먹칠한 것을 스스로 자학하며, 떠나온 그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봄만 되면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 쓰리고 휑한 가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의 밑그림이 되었다. 그 이후, 너무 늙어버린 것 같은 자신을 느끼며 이따금 '글'이라는 것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김정남(소설가.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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