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마흔에도 생각나는 어머니 손맛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따스한 봄기운을 빌려 양지바른 쪽 과수밭에서는 상큼한 봄나물들이 앞다퉈 고개를 내밀 것 같다. 꽃샘 추위가 연방 찬바람을 내뿜지만 이따금 따스한 햇살이 영락없이 하늘거려 봄내음에 코끝이 싱그럽다.

이맘때쯤이면 연방 하품이 나고 나른한 육체는 힘이 쭉 빠지고 창가 쪽에 앉아있으면 고개가 끄떡여지고 입맛도 떨어져 뭔가 입이 궁금하고 맛나는 음식이 그리워지고 묵은 김치가 괜스레 군내가 나는 것 같아 깔끔하고 정겨운 음식이 그리워진다.

옛날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나는 대바구니와 헌 운동화를 갈아 신고 호미와 헌 칼을 챙겨들고 외진 과수밭을 헤매고 다녔다. 봄에 가장 먼저 쑥 내민다고 하는 쑥과 냉이, 씀바귀, 돈나물, 달래, 봄동, 미나리 등 정말 향기도 좋고 상큼한 맛 그 자체인 봄나물들이 잠시 수고로 대바구니 가득 담긴다.

들깨 넣어 끓인 쑥국과 달래를 초고추장에 새콤달콤 무치고 봄동과 미나리를 섞어 무친 겉절이와 보리쌀 뜨물을 받아 끓여 식혀 만든 돈나물 물김치와 냉이를 삶아 콩가루를 뿌려 만든 찜, 씀바귀를 삶아 땅콩, 잣가루와 된장, 참기름을 골고루 넣어 조물락 무쳐 질퍽한 질그릇에 청국장 한소끔 끓여 쓱싹 비벼 먹었던 그 봄나물 비빔밥은 내 나이 마흔이 되도록 늘 잊히지 않는 맛이다.

아무리 어머니 맛을 살리려고 해도 왜 나는 그 맛이 나오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연륜에서 나오는 손맛일 게다.

이번 주말에는 두 아이 손잡고 양지 바른 들녘으로 봄나물을 캐러 가야겠다. 옛날 어머니께서 해주신 그 맛을 음미해가면서 나도 봄나물 반찬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봄 선물을 해봐야겠다.

윤미향(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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