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천, 자넷 리, 김가영, 차유람…. 당구의 전설 혹은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당구인들이다. 스리쿠션(3C)의 황제, 포켓볼의 여왕,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이자 작은 마녀, 얼짱 당구소녀. 이들의 활약과 더불어 당구계의 전설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요즘은 회식자리가 당구 한 게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폭음보다는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당구장에 가서 한두 시간 게임을 즐기는 모임들이 늘어난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당구장은 18세 이하 청소년들이 출입할 수 없었던 금지구역이었다. 그 시절 당구장을 드나들었던 30대 중반 이상에게 당구장은 추억의 장소였고 여전히 불량스런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으로 각인되기 일쑤다. 그러나 1993년 이후 당구장은 레포츠시설로 분류되면서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워졌고 덩달아 당구장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던 놀이가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레포츠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금메달숫자만 10개다. 스리쿠션과 포켓볼 외에도 잉글리시 빌리아드(English Billiard), 스누커(Snooker) 등 생소한 종목에도 5개의 메달이 걸려 있다.
한두 차례 이상 당구를 접해 본 우리나라의 당구동호인 숫자만도 1천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1, 2년 사이 대구지역의 당구장이 2년여 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났다. 대학가인 경산까지 포함하더라도 3백여 곳에 불과하던 당구장이 600여 곳으로 급증한 것이다. 신장개업하는 곳은 국제식테이블을 갖추고 있는 등 당구장시설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업그레이드됐다. 무엇보다 당구초보자들도 쉽게 당구를 칠 수 있도록 당구장마다 회원을 모집, 프로선수들을 초빙하는 당구교실을 수시로 열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지역의 최대 당구동호회인 '대구사랑당구사랑'(cafe.daum.net/taegudanggu)의 당구교실 번개모임이 열린 7일 저녁 대구시 달서구의 명가당구장. 10여 명의 동호인들이 대구당구연맹 소속 정연철 선수로부터 3쿠션에 대한 테크닉을 배우고 있었다. 연령대도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홍일점인 장인경(29·여) 씨의 모습도 보였다. 포켓볼을 치는 여성에 비해 3쿠션을 치는 여성을 보기는 어렵다. 장 씨는 지난해 9월 동호회에 가입, 150(당구수준) 정도로 실력을 높였다. "대학 다닐 때 남자친구에게 당구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너무 당구를 치고 싶어서 동호회에 가입했다."는 장 씨는 "포켓볼에 비해 3쿠션 당구는 생각을 더 하게 되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서정욱(36·전자부품유통업) 씨는 "매일 (당구장에) 오다시피하니까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곳에 와서 당구를 친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만에 당구수지(?)가 300으로 늘었다. 당구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그의 말은 사실 오해다. 대구시내 웬만한 당구장은 10분에 1천~1천200원. 1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면 6천 원에서 7천 원. 노래방보다도 비싸지 않은 편이다. 게임비는 진 사람이 낸다는 불문율이 있어서 만일 게임을 이긴다면 공짜인 셈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당구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 빠져든다. 아이디가 '살인의 추억'(37)이라는 동호회원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상태인데도 이날 당구교실 번개모임이 열리자 만사 제쳐 두고 나왔다.
"친구들하고 쳐도 좋지만 동호회에 와서 건전하게 당구를 치는 것이 최고"라는 박완웅(54) 씨는 이날의 최연장자다. 동호회모임에 나오면 프로선수들이 나와서 자세를 잡아주고 기술지도를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민복지센터가 생기면 '당구교실'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당구가 생활스포츠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있다. 당구장 분위기가 밝아졌다고는 하나 누구나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게임을 하고싶을 정도로 개방적이지 않은 데다 실내에 자욱한 담배연기가 문제다. 대한당구연맹 등이 당구장 내 금연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구장을 찾는 동호인들이 금연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또 하나 대구시 등으로부터 생활체육으로 인정받는 것도 필요하다.
남주필(41) 씨는 "당구를 치다가 핸드폰이 오면 움찔하게 된다."며 "당구공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당구장에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아차리면 좋지않은 인상을 줄까 꺼림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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