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수많은 역사적 도시들을 만난다. 영원한 도시 로마,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물의 도시 베네치아, 북의 로마라 불리는 프라하 등 유럽의 유명도시들은 거의 모두 중세부터 건설된 도시들이다.
이런 도시들의 이름만 들어도 그 도시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낭만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3천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는 폐허와 같은 제국시대의 유적과 함께 중세의 건축물과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서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베네치아는 6세기부터 건설되었지만 현대에 와서 육지로부터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철도와 도로 등을 새롭게 건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의 역과 주차장 등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9세기 말에 성으로 축조된 프라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지지만 두 시가지가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위에 성채형으로 건립된 도시들인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라 불리는 아시시, 성녀 데레사의 고향인 아빌라를 비롯하여 페루지아 등은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고유한 아름다음을 선사하고 있다.
넓은 들판에 건설된 도시들이든 산꼭대기에 성채형으로 건설된 도시이든 유럽의 도시들은 모두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심을 이루고 있는 건물의 높이가 거의 일정하고 이웃한 건물의 색깔이나 재료도 같은 것을 사용함으로써 도심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이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도시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건설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에 따라 도시를 건설하는데 비록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 기본계획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에서 새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도시 전체계획을 고려하기에 그 도시 만의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중세 아니 고대에 건설된 도로와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며, 편리한 건물보다 도시 전체의 조화를 가꾸어 가는 모습에서 이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개인의 편익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이고 있다. 아니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통과 역사가 살아있고 조화와 균형 그리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깃든 도시를 건설해왔다. 그러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과 정신이 배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60년대 서울 마포에서 아파트가 건축된 후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아파트를 지어 국민 주택보급률을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주변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어졌다. 더구나 최근에는 초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 업무용 및 상업용 건물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건축되고 있다.
땅과 돈만 있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건물을 짓고 있는 셈이다. 서울뿐 아니라 대구의 도심에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건물을 짓고 있지만 주변과 어울리는 건물을 찾아볼 수가 없다. 20층의 건물 옆에 3층짜리 건물, 그 옆엔 단층짜리 한옥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나라 도심의 모습이다.
혹자는 '내 마음대로 내 땅에 내 돈으로 건물 짓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부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천민자본주의와 오직 자신의 세계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또 행정당국도 치밀한 도시계획은 세우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마 발전 위주의 사고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기른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정신이 그런 도시의 모습을 닮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삭막하기에 양보나 이웃에 대한 배려와 타협은 차츰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익과 생각만을 점점 더 내세운다.
이제부터라도 도시 개발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 아니 우리 국민 모두가 도시의 모습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도시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어머니의 품이 안온해야 자녀들인 도시민들은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런 도시에 대한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명현(신부·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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