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無寸(무촌)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너무 가까워서 촌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부란 등 돌리면 남이기에 촌수가 없다고들 한다. 연전의 인기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이 비슷한 대화가 나온다. "부부가 등 돌리고 나면 그 등과 등 사이가 얼만지 알아? 등 돌린 사람 얼굴 다시 보려면 지구 한 바퀴 돌아가야 한대. 등과 등 사인…그렇게 아주 멀어."
◇아무리 치열하게(?)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절대 각방은 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부부들이 많다. 하루 이틀 자존심 죽이면 칼로 물베기 식으로 풀어질 일도 딴방을 고집하기 시작하면 장기전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원만한 부부간 조화를 위해서는 같은 방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각방을 쓰거나 따로 잠자는 부부들이 크게 늘어 '혼자 잠자기 신드롬'이라 할 만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다. 집 지을 때 자신만의 공간을 요구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는 것. 최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일부 주택업체들은 신축 주택의 4분의 1 이상을 부부 각자의 방이 있는 구조로 짓고 있다고 한다. 이 추세라면, 2015년경엔 침실 또는 안방이 2개인 주택이 60%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배우자의 수면 버릇이나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꼽힌다. 심한 코골이, 아기 울음소리, 심야 컴퓨터 사용, 새벽운동 등이 깊은 잠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가정 내 여성의 역할 변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코를 골면 다른 한쪽이 이튿날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각방 사용이 가정 불화의 징후는 아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바이엘헬스케어와 행복가정재단 연구소 공동 조사에서는 대상자의 12.7%가 "다른 방에서 자는 일이 많다"거나 "항상 다른 방에서 잔다"고 답했다. 10쌍 중 최소 1쌍꼴이다. 자기만의 내밀하고도 자유로운 공간을 원하는 부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이 느끼는 긴장감'압박감이 큰 탓일 것이다. 기혼 부부들의 '혼자 잠자기' 경향은 급변하는 현대 라이프 스타일의 한 단면임에 틀림없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