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거리에서 화랑을 시작한지 15년째다. 봉산문화협회장을 3년째 맡고 있지만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이 진정으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인가 하는데 대해 의문이 많다.
얼마 전 경주에서 온 어느 가족 방문객은 " '1년 전에 왔을 때보다 변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안고 가족과 함께 다시 왔더니, 거리는 더 싸늘해지고 화랑도 여러 개 안보이고 웬 아파트까지 들어서서 이상하네요"라면서 아쉬워했다. 이것이 봉산문화거리의 현주소다.
날이 갈수록 퇴색해 가는 거리를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데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다.
15년 전부터 자생적으로 문화업소 50여 개가 몰려든 봉산문화거리는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주변 발전은 비교적 더뎌서 집세가 싸고 주차가 편리해 영세한 문화업소가 문을 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봉산문화거리 입구의 초라한 장승 두 개와 전시회를 알리는 거리 현수막 외에는 문화거리라고 느낄만한 시설이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문화거리에 맞지 않은 업소들이 많이 생겨나 화랑을 비롯한 문화업소들은 존폐 위협마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 때마다 시장 후보자들이 저마다 대구를 문화도시로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지방자치제 이후 지금까지 대구시장·부시장 그 누구도 봉산문화거리를 찾지 않았고, 주무 관청인 중구청장도 공식 행사 외에는 찾아오지 않은지 오래다.
대구를 찾는 외국인이나 외지인을 봉산문화거리로 안내해 문화도시의 자부심을 보여주고 싶은 시민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대구시에서도 큰 국제 행사 때마다 외국인에게 봉산문화거리를 알리고자 관광투어를 여러 번 실시한바 있지만 실제로 보여 줄 것이 없어 부끄러울 뿐이었다.
최근에 대구시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예산을 세우고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앞서 걷고 싶은 거리는 당연히 봉산문화거리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봉산문화거리는 예술이 있는 거리이며 고단한 도시민의 삶에 위안을 주고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거리이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곳을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화거리를 만든다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봉산문화거리는 전국 최고의 명물거리로 거듭날 수 있다. 대구시가 문화도시에 걸맞는 의지를 갖고 과감히 투자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첫째, 공용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난을 해소한 다음 노상 주차장을 없애고 인도를 확장해 걷기 편한 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넓어진 인도의 적당한 공간에 세계적인 조각 작품을 세우면 이 조형물 하나가 관광객을 유치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서울시가 세계적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청계천 상징 조형물 '스프링'(Spring, 세계적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쿠제 반 브르겐의 공동작업)이 좋은 예다.
둘째, 가을이면 앙상하고 볼품없는 가로수를 사철 푸르면서 자태가 아름다운 오래된 소나무로 교체해 한국 냄새가 물씬 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20개의 가로등을 유명 디자인에게 의뢰해 하나하나가 다른 디자인의 가로등 겸 조형물로 세우는 것이다. 벤치도 작가의 예술작품으로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는 대단할 것이다.
셋째, 문화거리에 대구 화단의 대표작가 이인성·주경·장석수·손일봉·변종하 등 作故(작고) 작가의 미니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문화거리의 집 을 개조, 대구미술을 보여주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작고 예쁜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작품은 구입하면 가장 좋고 여의치 않으면 유족의 기증이나 소장자의 기증, 대구시의 보유 미술품으로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넷째, 봉산문화거리에서 타 업소를 규제하는 대신 문화업소에 세를 놓는 건물주와 문화업소 세입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세금 감면, 집세 보조, 건물수리 보조, 간판 교체 등 법과 조례를 만들어 다양하게 지원하면 좋은 업소들이 몰려 올 것이고 주 거리 이외에 주변 골목들도 동반 발전하게 돼 최고의 문화거리가 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의 명물인 봉산문화거리를 찾는 시민들이 가로수 솔향에 취하고, 최고의 조형물에 감탄하고, 그림에 감동하며, 거리의 흐르는 음악에 빠져드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자. 봉산문화거리가 대구의 명물, 한국의 명물 거리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한다.
이상래 대구봉산문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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