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강
이하석
내 쓸쓸한 날 분홍강 가에 나가
울었지요, 내 눈물 쪽으로 오는 눈물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사월, 푸른 풀 돋아나는 강 가에
고기떼 햇빛 속에 모일 때
나는 불렀지요, 사라진 모든 뒷모습들의
이름들을.
당신은 따뜻했지요.
한때 우리는 함께 이 곳에 있었고
분홍강 가에 서나 앉으나 누워있을 때나
웃음은 웃음과 만나거나
눈물은 눈물끼리 모였었지요.
지금은 바람 불고 찬 서리 내리는데
분홍강 먼 곳을 떨어져 흐르고
내 창 가에서 떨며 회색으로 저물 때
우리들 모든 모닥불과 하나님들은
다 어디 갔나요?
천의 강물 소리 일깨워
분홍강 그 위에 겹쳐 흐르던.
정말 있긴 있나요, 분홍강이란 게. 분홍이 흐르는 강이란 기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뜩해지네요. 고운 노을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강인가요, 강안에 흐드러진 진달래 꽃그림자인가요. '강'이라는 명사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분홍'이라는 형용사를 굳이 얹어놓은 까닭은 뭘까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한데, 그 단서는 "사라진 모든 뒷모습들의 이름들". "천의 강물 소리 일깨워" 흐르던 그날의 함성, 그것이 분홍강의 속뜻이로군요. 혁명의 붉은 격정을 노래하되 분홍빛으로 간접화해서 읽는 시선. 그런 객관적 시선이 즉물적 상상력이란 시학을 탄생시켰군요. 불과 20대에 이런 개성으로 한국 시의 외연을 넓힌 시인이 올해 갑년을 맞게 되었으니 참으로 무상타, 시간이여.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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