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9일 대학이 법인화를 통해 자율 경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립대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예고했다. 국립대 법인화는 1995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나 반대 여론이 만만찮아 지금껏 유보돼오다 이번에 추진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힘든 실정이다. 내용과 쟁점을 짚어본다.
▶ 특별법의 내용
법안의 골자는 국립대학을 국가에서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한편 다수의 외부 인사를 운영에 참여시키는 개방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 자기 책임 하에 발전전략을 수립, 추진하고 특성화시켜나가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국립대 운영은 현재 학내 구성원 위주의 폐쇄적 운영체제 대신 개방형 이사회체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정부 추천 등 15인 내외로 구성되는 이사회는 의사결정권을 쥐고 정관 변경 및 예·결산 등 법인 운영을 책임지면서 교직원의 인사 운영과 총장 선출에 결정권을 갖는다.
정부회계와 기성회회계로 구분되던 회계구조는 법인회계로 일원화되지만 정부 지원은 계속된다. 교직원의 고용은 승계되지만 교직원연금은 사학연금을 적용받게 된다.
▶ 찬성-경쟁력 강화 위해 서둘러야
시대 변화와 세계적인 추세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 국립대의 법인화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대는 산업화 시대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바탕이 됐다. 그러나 인사·재정·조직에서 국가통제를 받는 타율적 체질은 경쟁력을 키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공무원 못지않은 철밥통 사회가 됐다. 서울대조차 세계 100위권 대학에 들까말까한 게 현실이다.'(신문 사설)
논의 자체가 1995년에 시작된 데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립대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임없었다는 사실은 이 논리를 자연스레 뒷받침한다. '대학 역사상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대학 경쟁력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중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신흥 강국들도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도 2004년 정부 행정조직이던 89개 국립대를 모두 법인으로 전환했다. 각국이 대학 교육에 관심을 쏟는 것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선 대학이 국가 경쟁력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신문 칼럼)
반대 논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 반대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째, 국가의 관리·통제 강화와 대학의 기업 경영화로 대학의 공공성과 대학 자치가 말살된다. 둘째, 연차적으로 국립대 재정 지원을 축소해 국가의 재정부담 책임을 피하려 한다. 셋째, 이윤 추구가 가능한 응용학문을 중시해 기초학문이 몰락한다. 넷째, 국가의 재정 지원 축소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여 학부모, 학생에게 엄청난 등록금 부담을 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국립대학 관계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법안에 정부의 국립대 재정지원 의무와 기초학문 육성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법인 소속으로 전환되는 교직원의 고용승계와 정년 및 연금 보장 등을 명시해 법인화가 돼도 교직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04년에 모든 국립대를 일시에 법인화한 일본과 달리 법인화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 된 대학이 자율적 선택에 따라 법인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교육부 관계자 칼럼)
국립대 법인화 추진에 대해서는 당연시하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 선을 긋거나 우리 나름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한 걸음 나아간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서울대에 도쿄대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지원을 하면서 자질구레한 학칙 개정과 사무실 칸막이 개조, 시시콜콜한 하급직원 인사까지 간섭해 왔다. 법인화를 해야겠다면 1년에 한 번 예산협의 말고는 대학 쪽 사람 얼굴도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완전한 자율을 줘야 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책임도 물을 수 있는 것이다.'(신문 사설) '국립대 교직원 사회는 법인화 여부를 놓고 소모전을 벌일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는 법인화 모델을 만드는 일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도 조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기본 틀을 만들어 원하는 대학부터 차근차근 전환하도록 추진해야 할 것이다.'(신문 사설)
▶ 반대-시기상조에 부작용 많아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국립대 경쟁력 강화라는 대명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인화가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특히 재정과 기반 측면에서 극히 취약한 구조인데 막무가내로 법인화하자는 것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대학 관련 지표 몇 가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제시한다.
'미국 독일 영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은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국가 부담률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1%인데 우리나라는 0.3%로 그 3분의 1도 채 안 된다. 대학교수의 강의 부담률(연구능력)을 나타내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도 OECD 평균은 약 17명인데 우리는 그 2.5배인 약 40명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약 11명에 불과하다. 이런 마당에 국립대학의 국제 경쟁력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교육부의 주장처럼, 법인화를 통해 재정 운용의 자율성을 아무리 부여한들 속 빈 재정으로 대학 경쟁력이 제고되겠는가.'(신문 칼럼)
찬성 입장에서는 반대론자들의 주된 논리를 고용 불안으로 몰고 가려 하지만 실제로는 더 큰 부작용이 예견된다는 지적이 높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재정 확충을 위한 등록금 인상 부분이다. '법인화 이후 일본에서 대학등록금이 2~3년 사이 약 5배 인상된 사례가 보여주다시피, 국립대학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사립대학 등록금의 더 한 층의 인상을 부추길 것이다. 이런 과정은 수업료 지불능력이 있는 상위 계층과 지불능력이 없는 하위계층 간에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확대-심화시키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이하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성명 인용) 교육부는 등록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현실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성화, 개성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초학문의 몰락이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늘날 전체 대학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미 개성화, 특성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실용학문-응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국립대학의 연구-교육마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기초학문-기초과학은 국립대학에서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이는 다시 한국 대학의 연구-교육체제를 실용학문-응용과학만이 비대해진 매우 기형적인 체제로 만들고 말 것이다.'
서열화에 따른 지방 대학의 몰락, 나아가 서울대를 제외한 여타 대학들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심상찮게 들린다. 일본이 국립대 법인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도쿄대의 성과를 부풀린 것이라는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월등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닌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들 간의 격차 및 소수 일류 대학과 다른 대학들 간의 격차를 한층 더 확대시키고, 대학서열화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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