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에 가면 여성 지점장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 가장 높은 금융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는 대구은행에만 해도 6명의 여성지점장들이 실력 발휘중.
그런데 예·적금 등 안정적 상품이 많은 은행과 달리, 위험자산 취급이 많은 증권사에서는 좀처럼 '여성 지점장'을 만나볼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증권업계에서도 속속 여성지점장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다. 20년 안팎의 증권영업 외길을 통해 '지점 책임자'의 위치에 각각 오른 정인숙(42) 한국투자증권 대구 지산지점장(2005년 5월 부임)과 김인숙(44) SK증권 대구 성서지점장(지난달 부임). 이들은 "여자라서 더 잘할 수 있었다."며 증권업에서의 '여성시대 개막'을 알렸다.
◆"차별요? 물론 있었죠."
"대구 제일여상을 졸업한 뒤 당시 가장 인기있던 은행 원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증권사로 왔는데 입사한지 2년이 지나도록 창구에 앉아 단순 업무만 했습니다. 능력이 뒤지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다른 업무는 주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닌데'를 몇번이나 되되며, 꼭 이 자리를 벗어나겠다고 다짐했죠." (정인숙)
"대졸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창구업무를 2년이나 봤습니다. 군대를 갔다온 남자동기와는 무려 10년씩이나 호봉 차이가 났습니다. 창구업무를 보다 집으로 퇴근하는 길 버스안에서 매일 엉엉 울었습니다. 분하고 원통해서요." (김인숙)
이들은 공통적으로 "심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혼자서 속상해하기도 했고, 김 지점장 경우, 웃사람들에게 따지고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력만이 살 길
두 사람 모두, 창구업무를 보며 남몰래 '칼을 갈았다'. 어깨너머 배운 지식을 통해 영업을 시작했던 것. 물론, 기존 업무를 보면서 했던 터라 '죽을 고생'을 했다.
"창구업무를 보면서 아는 선배, 교수님 등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습니다. 물론 매일 퇴근 시간은 자정이 넘었죠. 처음에 거래를 텄던 지인들의 수익을 내주니, 소개를 통해 영업반경이 넓어졌죠. 2년만에 창구를 벗어나 본격 영업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김인숙)
"5년동안 창구업무를 봤습니다. 물론, 약 3년간은 창구업무와 영업을 함께 하는 '이중 근무'를 했죠. 창구업무를 보는 틈틈이 책을 보며 기초를 익히고, 고객들과의 친분 쌓기에 나섰습니다. 이를 통해 영업실적을 쌓아놓으니 결국 창구직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력 있는 직원을 회사 측이 묶어놓을 까닭이 있나요?" (정인숙)
두 사람은 지점장에 오르기까지 줄곧 '영업실적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정 지점장은 영업초년병 시절, 실적이 너무 좋아 지점 자체적으로 정 지점장의 실적을 깎아 보고하고, 다른 영업사원들 몫으로 나눠주기도 했다는 것.
◆여성이 훨씬 강하다(?)
"증권업계는 정말 험한 곳입니다. 원금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상황이 빈번합니다. 긴장도가 엄청나게 큽니다. 이런 풍토에서 여성의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더욱이 여성은 고객 응대에서 점수를 따고 들어갑니다. 또 여성들은 내실있는 영업을 합니다. '내지르기식' 영업으로 당장 1등이 될 수 있지만, 저는 당장엔 2등을 하더라도 고객들에게 탄탄한 길을 권유합니다. 결국엔 수익이 더 커집니다. 여성의 장점이죠." (정인숙)
"아무리 영업이라지만, 제 영업을 위해 고객들의 재산을 날릴 수 없다는 것을 철칙으로 합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절대로 주식 투자를 못하게 말립니다. 보수적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거 사면 무조건 된다'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열풍주'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요. 기초가 튼튼한 곳에만 투자를 권합니다. 초보시절, 작전이 들어온 경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식시장이 안정되면서 제 방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김인숙)
나란히 '영업의 여왕'이 돼왔던 이들은 세밀한 과학적 판단하에 투자가 이뤄져야하는만큼, 여성에게 큰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열심히 했더니…
두 사람 모두 고액연봉자다. 열심히 했더니 저절로 돈이 따라오더라는 것이 두 사람 얘기. 억대 연봉자들인데 아직 최대 연봉이 3억 원은 넘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일해 항상 바빴다. 정 지점장은 기혼(남편 역시 증권사 지점장이다)이지만 너무 바빠 아들 하나를 두는데 만족했다. 출산휴가조차 채우지 못하고 출근했다는 것.
김 지점장은 미혼. 김 지점장은 솔직히 너무 바빠 35살 이전엔 시간이 안돼 결혼을 못했고, 그 이후 역시 영업에다 학위 공부 등으로 인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증권업계는 물론, 이제 모든 영역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남여차별은 사라졌다."며 "여성들이 적극성을 가진다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증권업계 여성간부 얼마나= 증권노조가 지난해 17개 증권사에 대해 연구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부장급은 남성이 1천10명에 이르는 반면, 여성은 10명에 불과했다. 차장급은 남성이 2천81명, 여성은 34명이며 과장급 역시, 남성 2천329명, 여성 223명. 대리급은 남성 2천412명, 여성 795명으로 여성 근로자들은 직급체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증권노조 연구보고서는 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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