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전쟁에서 승리의 원동력은 현대전과 마찬가지로 병력의 수와 보다 파괴력이 큰 무기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군대와 뛰어난 무기를 가졌더라도 군대의 사기와 지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6세기 말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 좋은 사례다.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운명을 걸었던 두 나라의 전쟁에서 고구려는 세 불리를 지략으로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 냈다.
▲神策究天文(신기한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妙算窮地理(오묘한 책략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네)/戰勝功旣高(싸움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知足願云止(그만 만족하고 돌아가기 바라네). 612년 고'수 전쟁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與隋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 시는 겉으로 상대를 칭송하는 것 같지만 속뜻은 적의 사정을 꿰뚫어본 고구려의 지략이 담겨 있다. 진퇴양난의 수나라를 상대로 심리전을 편 것이다.
▲고구려는 남북조로 나뉘었던 서토(西土)를 통일한 수나라와 3차에 걸쳐 큰 전쟁을 벌였다. 이전까지 남조의 陳(진)과 북조의 隋(수)를 놓고 등거리 외교를 펼쳤던 고구려는 589년 수나라의 통일을 계기로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운명의 일전을 벌이게 된다. 북방의 패자 고구려와 수나라의 중원천하가 맞붙게 된 612년의 살수대첩은 바로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전술전략 속에 펼쳐진 전쟁이었다는 것이 사가들의 해석이다.
▲수나라는 군사를 물리고 싶어도 명분이 없었다. 을지문덕 장군이 우중문, 우문술에게 철군의 명분을 준 것은 정확하게 적정을 간파한 결과였다. 고구려를 중원의 판도내로 넣으려다 참패의 수모를 당한 수 양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철군밖에 없었다. 그러나 패전의 책임을 물어 을지문덕을 놓아준 유사룡을 죽이고, 우문술의 목에 쇠사슬을 묶어 끌고가도록 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한'미 FTA 8차 협상에서 우리 농업협상팀이 우중문시의 원문과 영역본을 미국 협상단에 건네 화제다. 미국 측에서 과연 이 시의 존재와 의미를 알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1천4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이 시가 여전히 거론된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래서 역사를 反面敎師(반면교사)라 했던가. 칼 든 전쟁도 아니고 상대도 다르지만 생존을 건 현대의 경제전에서도 역사는 유용하게 쓰인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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