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 민병도-風磬(풍경)

風磬(풍경)

민병도

부처님 출타 중인 빈 산사 대웅전 처마

물 없는 허공에서 시간의 파도를 타는

저 눈 큰 청동물고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뼈는 발라 산에 주고 비늘은 강에나 바쳐

하늘의 소리 찾아 홀로 떠난 그대 만행(卍行),

매화꽃 이울 때마다 경(經)을 잠시 덮는다

혓바닥 날름거리며 등지느러미도 흔들면서

상류로, 적요의 상류로 헤엄쳐 가고 나면

끝없이 낯선 길 하나 희미하게 남는다

부처님도 출타 중인 텅 빈 절간입니다. 추녀 끝 풍경만이 무시로 고요를 깨웁니다. 청동물고기의 큰 눈 속에 참 많은 생각들이 일고 또 잦습니다. 풍경은 매여 있기에 靜中動(정중동)이요, 늘 흔들리기에 動中靜(동중정)입니다.

시인은 그 풍경을 따라 포행에 나섭니다. 마음을 들어올려, 물 없는 허공에서 시간의 물굽이를 당겼다 놓았다 합니다. 뼈와 비늘이 상징하는 번뇌와 망상을 벗고, 적요의 상류로 나아가는 데서 구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다 헤쳐 간 뒤에 남는 희미한 길 하나. 정각은 언제나 끝없이 낯선 길 위의 풍경입니다.

절간 어디쯤에선 하마 매화가 이웁니다. 피면 이울고, 오면 가느니. 꽃 그늘이 흔들릴 적마다 경을 덮고, 누진 마음을 들어올립니다. 분별의 兩邊(양변)을 여의면 있음도 없음도 없다지요. 풍경은 이미 텅 빈 마음의 추녀 끝에 달려 있습니다. 그 소리 너머로 또 한 꽃잎이 집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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