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3월의 바람 속에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당신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시'3월의 바람 속에' 중에서).

어느 해 봄 내가 받은 신학생의 편지에 '3월의 강변에서 불러보는 나의 누이 같은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시적인 표현이 맘에들어 몹시 가슴이 뛴 적이 있습니다. 남쪽의 봄은 매화가 제일 먼저 알려주고 그 다음은 천리향이 핍니다.

가을엔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지지만, 봄에는 왠지 마음이 들뜨고 어수선한 느낌이 들어 싫어했는데, 갈수록 봄이 좋아짐은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불쑥 처음으로 나를 찾아 온 젊은 독자인 그대와 함께 광안리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해 달라던 덕담을 이 편지로 보충할까 합니다. 날씨가 차갑고 바람 많이 부는 날은 하늘과 바다의 빛깔도 더욱 맑고 푸르고 투명함을 우리는 함께 체험했지요? 우리네 삶 역시 시련의 바람을 잘 이겨내야만 튼실한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바닷 바람 속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내가 임의로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를 쓰는 달'이라고 명명한 3월을 나는 어느 달 보다도 좋아한답니다.

꽃샘바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네요. 시간을 아껴 써라. 하루 한 순간도 낭비하지 말고 소중하게 살아라.

잎샘바람은 또 말하네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넘어지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 죽지 말고 다시 부활하는 법을 배워라.

그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의 우리는 절제와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많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식사시간이 관습상 더딘 프랑스의 식당가에서 후식을 끝까지 못 기다리고 자리를 뜨는 한국인관광객들의 '빨리 빨리' 병에 대해 풍자한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답니다.

어느새 이 빨리빨리병은 도처에 스며들어 우리 삶의 일부가 된 듯합니다. TV도 좀 더 지긋이 보지 못하고 쉴새없이 리모콘을 눌러대는 우리의 모습, 인터넷의 속도가 조금만 느려도 초조해하고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 버스나 전철이 조금만 더디 와도 버럭 화를 내곤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조그만 슬픔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숨차게 바쁜 것인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성급함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오늘 3월의 바람이 되어 그대와 나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에 본의 아니게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 질 적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쉿! 아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직은 식별이 필요하니!'하고 어질게 달래줍니다.

절제의 미덕을 잃고 좋지 않은 말이나 행동이 마구 튀어나오려고 할 적엔 '잠깐! 두고 두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니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해요'하고 슬기롭게 달래줍니다. 이리하다 보면 함부로 치닫던 마음도 말 잘 듣는 어린이처럼 길이 잘 들여져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잔잔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거에요.

이 봄에 우리는 봄햇살 닮은 웃음으로 일상의 길을 부지런히 달려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로 해요. 많은 이들이 즐겨 읽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하는 글의 일부로 이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자기가 태어나기 전 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해인(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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