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교수님들은요?

대구에서 열리는 지역경제 관련 세미나와 토론회에 참석하면 으레 등장하는 말이 있다. SWOT분석 기법을 동원한 발제문과 보고서는 양질의 인력이 풍부하다는 점을 지역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SWOT는 내부의 강점(Strength) 및 약점(Weakness)요인과 외부 환경의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요인을 분석한 뒤 전략적 대안을 찾는 분석 틀이다.

지역의 강점이 풍부한 우수 인력이라는 주장은 언뜻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지역에 있는 4년제 대학만 해도 20여 개를 넘고 대학 교수들과 재학생만 꼽아도 그 수가 얼마인가. 하지만 한 번만 되새겨보면 무책임하고 高踏的(고답적) 분석이란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대학교육이 고등교육이 아니라 대중교육이 되고, 대학 서열화가 강화된 현행 대학입시제도 아래에서 지역 대학은 더 이상 인재 육성의 요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의 우수 인력은 고교를 졸업하면서 먼저 고향을 등지고 나머지 인력조차 대학을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그래서 필자는 어떤 경제 세미나에서 지역에 우수 인력이 많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은 이제 폐기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개진했었다. 필자의 지적 탓인지 모르나 이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연구분석 보고서에서 지역의 강점으로 거론됐던 '우수인력 풍부'란 주장이 사라졌다.

"요즘 지역 4년제 대학생들의 수준은 70'80년대 전문대학 수준이다." 지역의 모 대학 총장이 평교수 시절 私席(사석)에서 한 말이다. 지역대학들의 하향 평준화와 위기 상황을 이보다 一目瞭然(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말은 없을 듯하다. 이 총장은 지역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신입생 학력도 '도토리 키 재기'나 마찬가지로 거의 차이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모 은행 지점장으로 재직하는 필자의 고교 후배는 은행 내 대학 동문회의 맥이 끊길 판이라고 했다. 연로한 선배들이 하나둘씩 퇴직하는 반면 자신을 잇는 후배는 십여 년째 입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와 국내 유수 대기업에는 아직도 적잖은 지역대학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포진해 있다. 과거 대구'경북지역대학 출신 인사들은 수도권 명문대학 출신에 버금가는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기업들이 지방대학 출신을 외면하는 데다 학생들의 능력과 자질도 떨어져 조만간 그 인맥은 완전히 단절될 상황이다.

물론 지역대학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현행 대학입시제도 아래에선 대학 서열화를 탈피할 묘수가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鈍才(둔재)를 유능한 인재로 키우는 게 교육이고 대학의 몫이 아니던가. '제자들의 머리'를 나무랄 게 아니라 대학들의, 교수들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강릉대학 전자공학과의 사례는 他山之石(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강릉대 전자공학과는 여느 지방대학과 마찬가지로 수능 배치표상에서 아래쪽에 위치하지만 한 지도교수의 헌신적 노력과 학생들의 분발로 미국 명문대학원에 2년 새 24명이나 합격했다고 한다. '삼류 지방대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목표에 도전하게 조련한 비법을 지역대학들도 배워야 할 것이다.

지역대학들도 左顧右眄(좌고우면), 불면의 밤을 보내는 줄 익히 알고 있다. 수도권 비대화와 지방의 枯死(고사)가 대학의 책임만도 아니고 책임질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지역대학들이 끊어줘야 한다. 정보화와 지식산업화 시대에 그 역할을 맡을 곳은 대학뿐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학생 수준 탓만 하는 교수들에게 학생들이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렇다 치고)교수님들은 요?"

曺永昌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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