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존재했지만 옛 교과서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나라, 우리나라 고문서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었던 나라, 그러나 일본서기와 중국서기(양직공도 梁職貢圖)에는 그 이름이 등장하는 나라.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현재 고령), 소가야, 고령가야(현재 함창), 성산가야 등 6가야로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 어느 날 거친 말굽 소리와 함께 나타난 강력한 정치집단 다라국(多羅國). 경남 합천의 황강과 낙동강을 낀 다라국은 서기 400년 전후 경상남도 합천 일대에 등장, 560년대에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천 지역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지만 정치집단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기 400년 전후 합천 옥전지역에 무기와 마구, 고급 장신구 등을 가진 나라가 등장했다. 이 금속제품들의 원류는 고구려지만 토기와 묘제의 모습을 보면 부산과 김해 지역에 이미 정착한 문화가 이 지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고급 문화가 어느 시점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웃 간의 문화전파가 아니라 주민의 직접 이동에 따른 유입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분의 규모와 부장물 성격으로 보아 강력한 정치집단임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이 나라의 성립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고구려의 대규모 군사행동은 고구려 문화의 전파와 함께 경주와 김해, 부산지역에 격심한 정치적 사회적 충격을 초래했다. 이 혼란의 와중에 부산과 김해 지역 지배계층 일부가 옥전으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다라국의 역사는 시작됐다.
◇ "농업국 아닌 철과 무역의 나라"
다라국은 농업국가가 아니라 철과 유리를 생산하고 판매한 국가일 가능성이 크다. 옥전 고분군에서는 각종 무기와 토기, 고급 장신구가 많아 출토됐다. 옥전(구슬밭)이라는 지명이 붙을 만큼 구슬류가 많이 출토됐다. 이 구슬과 옥들은 목걸이로 사용된 것인데, 대부분 유리지만 호박, 마노, 비취곡옥 등도 포함돼 있다. 구슬과 옥을 만들었던 숫돌도 발견돼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급 장신구와 구슬은 다라국이 상당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무덤에는 이런 경제력을 뒷받침할 농기구가 거의 부장되지 않았다. 이는 다라국의 경제력이 농업에 기반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라국은 인접한 황강의 물길을 따라 낙동강으로 뻗어나갔으며 다른 나라와 밀접하게 교류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생산한 다양한 철제품과 각종 옥류를 다른 나라에 팔고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특히 천마총을 비롯해 경주지역 외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었던 서역의 '로만글라스'는 옥전고분군 축조집단이 황강 물길을 따라 먼 외국과 교류했음을 시사하는 유물이다.
다라국이 무역에 중점을 든 국가임을 설명하는 예는 또 있다. 금동장투구는 고구려 계통의 유물이며, 용봉양문양 고리자루 큰칼과 말안장틀의 거북등무늬는 백제 또는 중국 남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신라와 창녕 등과 교류를 통해 얻은 것으로는 금동제 허리띠, 창녕형 토기 등이 있다.
◇ 역동성 갖춘 전쟁의 국가
다라국은 전쟁을 많이 치렀던 국가일 가능성이 높다. 옥전 고분군에서는 재갈, 안장틀, 발걸이, 말띠 드리개, 말띠 꾸미개 등 다양한 마구(馬具)가 등장한다. 놀랍게도 옥전 고분에서는 전투 때 말을 보호하기 위한 말 투구 6점과 말 갑옷 3구도 출토됐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말투구가 모두 14점(옥전 투구 포함)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다라국이 얼마나 전투에 민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신라의 말 갖춤 양식이 장식성에 가까운데 반해 옥전 고분군에서 발견된 말 갖춤은 실용성이 강해 이 나라 기마군단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정교한 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철기제작 수준과 강력한 군사력을 보여준다.
특히 백제나 신라의 왕릉에서나 출토되었던 용봉문환두대도가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점은 이 나라 지배세력의 힘과 이 무덤의 주인이 왕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환두부에는 목이 서로 교차된 용과 봉황이 머리 뒤쪽으로 뻗은 귀를 서로 붙인 채 서 있다. 용은 입은 벌리고 있고 봉황은 입을 다물고 있다.
가야시대 토기에는 명문이 없었다. 그러나 1986년 합천댐 수몰지구 저포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토기에는 음각으로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라는 명문이 있었다. 하부는 출신지역, 사리리는 인명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령이 상부, 합천 대병'봉산 일대가 하부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백제 유입품 혹은 백제계 인물과 관련한 유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 합천박물관에서 다라를 만난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 고분군 앞에 지어진 합천 박물관에는 다라국 유물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용봉문환두대와 금제 귀걸이를 비롯해 각종 장신구, 철기류, 토기류 등 다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 3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또 실물크기로 복원된 가야시대 다라국 지배자의 무덤과 도성(都城)의 미니어처 및 다양한 영상자료도 준비돼 있다.
박물관 뒤쪽 황강변 야산에는 대형 고분 27기와 약 1천기의 무덤이 분포돼 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5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무려 2천500여점의 유물이 출시됐다. 출토 유물은 질적으로 우수하고, 양적으로 풍부하다. 우리나라 고분에서 발견된 모든 종류의 유물이 출토됐으며, 가야지역 최고의 고분군으로 꼽히고 있다. 박물관에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코너가 준비돼 있는데 탁본, 인경, 토기 맞추기, 갑옷 입어보기 등이 가능하다.
문의) 055-930-3753
◇ 백리 벚꽃길 마라톤 대회
황강 상류의 합천댐과 백리 벚꽃 길(44km)에 가보자. 호수 주변에는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등 수려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함박눈처럼 날리는 벚꽃과 호반은 산중 바다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매년 4월초 벚꽃이 만발하지만 따뜻한 겨울을 보낸 올해는 3월말쯤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4월 8일에는 이곳에서 벚꽃마라톤대회(제 6회)가 열린다. 합천호 백리 벚꽃길을 따라 달리는 이 마라톤 대회는 전국에서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메이저급 대회다. 작년 대회에는 대구'경북에서도 2천 500여명이 참가했다.
합천 벚꽃 마라톤 대회는 여느 마라톤 대회와 달리 참가에 각별한 의미를 두는 대회로 알려져 있다. 상금은 적은 반면 수상 대상과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종목별 시상품 역시 모두 합천 지방 토산물로 한정해, 대회 의미를 더한다. 종목은 5km, 10km, 하프, 풀 등으로 대한육상경기연맹 공인 코스다. 문의 055)930-3886, 931-9625
◇ 주변 명소
합천호는 붕어낚시로 유명하다. 아직은 조황이 좋지 않으나, 보리가 익을 무렵, 첫 비가 내리고 나면 이곳 사람들 말로 '고기가 미친다.' 이맘때가 되면 붕어들은 산란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낚시꾼들을 낚싯대 당기기 바쁘다. 마대자루에 고기를 담아야 할 만큼 물고기가 넘친다고 한다.
합천 일대에는 이외에도 명소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이자 팔만대장경의 고찰 해인사, 5월초 황매산의 철쭉제, 오광대 탈놀이의 발상지인 덕곡면 율지리 문화마을, 생태계의 보고 창녕 우포늪 역시 둘러 볼만하다.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는 과거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태극기 휘날리며' '서울 1945' '바람의 파이터' 드라마 '영웅시대' '패션 70's'를 촬영했던 이 세트장에는 주말마다 1천 5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곳에서는 1936년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호텔인 반도호텔, 1927년 세워진 경성방송국, 일제시대 건설한 서울역, 동화백화점, 경성고보, 적산가옥, 조선총독부, 돈암장 등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했던 전차와 기차, 대공포, 지프차를 비롯해 시가지 전투장면에 등장했던 낡고 부서진 건물들도 볼 수 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국내 유일의 시가지 전투 서바이벌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문의:합천군 관광개발사업소 055)930-3751
◇ 합천 박물관 가는길
※ 대구에서 출발, 88 올릭핌 고속도로 고령 나들목에서 내려 합천 박물관을 거쳐 영상테마파크와 합천호, 백리 벚꽃길, 옥계서원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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