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또 다시 진화했다. KTF가 지난 1일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로 불리는 HSDPA(High Speed Downlink Packet Acess·고속하향패킷접속방식)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화상 통화가 가능하고 MP3음악 한곡을 단 2초만에 내려받을 수 있는 초고속 무선통신 서비스다. 쉽게 설명하자면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방식을 말한다. 홍콩, 핀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HSDPA를 이용한 화상통화 서비스를 운영중인 곳도 있지만 전국 규모의 서비스를 시작하기는 한국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6월 이 기술을 상용화 해 수도권과 광역시 등지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넌 듣니? 난 본다!
일단 소비자가 느끼는 3세대 이동통신의 가장 큰 변화는 화상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 듣고 말하는 전화에서 이제는 보고 즐기는 전화로 진화하면서 '꿈의 통신시대'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이다.
이런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기존보다 6배나 빠른 전송속도 덕분. 전화를 받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주변 상황까지 생중계 할 수 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도 명절때나 되야 볼 수 있던 손자의 재롱을 휴대전화로 볼 수 있고, 어린이집에 설치된 화상캠을 통해 자녀가 친구들과 별 탈 없이 잘 어울리고 있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또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서 상대방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면서 영상 채팅을 즐길 수도 있고, 최대 4명까지 다자간 영상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 '목소리'의 세계에서 '영상'이 더해진 휴대전화의 변신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갖가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내겐 너무 행복한 화상전화
# 맞벌이로 늘 정신없는 아내를 위해 오늘은 K씨가 장보기에 나섰다. 신나게 마트로 달려가 쇼핑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K씨. 하지만 이내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콩나물은 뭘 골라야 할지, 두부는 어떤걸 사야 아내 마음에 들지 영 헷갈린다. '역시 아내와 함께 나올 걸 그랬나' 잠시 푸념도 해 보지만 이내 K씨는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아내에게 화상전화를 걸었다. "콩나물은 A사껄 살까? 아니면 B사껄 살까? 양은 이게 적당하겠지?" 내친 김에 아내에게 선물할 귀걸이도 하나 골랐다. "내가 몇 가지를 골라봤는데 어느게 제일 마음에 들어?" 오늘은 정말 점수 제대로 딸 것 같다. 덕분에 당분간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아무 잔소리 없이 OK해 주겠지?
#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둘째 딸과 팩스로 소식을 주고 받던 H씨. 하지만 화상 전화 덕택에 이젠 굳이 팩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하게 됐다. 딸이 하는 이야기를 수화를 보고 알아들을 수 있고, 딸은 H씨의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로 여겨졌던 전화. 하지만 화상통화가 가능하게 되면서 이젠 언제 어느 때든 딸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은지, 어떤 기쁜일이 있는지 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
# 해외에서 근무중인 P씨. 첫 아기 출산일에도 그는 아내와 함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화상전화가 있어 천만다행. 막 분만을 마치고 나온 아내와 화상통화를 하며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부스스한 모습의 아내가 그렇게 예뻐보일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화면으로라도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정말 기술의 진화에 감사해야할 일이겠지요." 장모님이 신생아실로 달려가 아기의 얼굴도 보여줬다. 선명한 화질 덕분에 아직 눈도 못뜬채 웅크리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마치 눈 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 일을 어찌할꼬
# 전업주부인 J씨. J씨는 늘 남편이 퇴근을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 이제 고작 3살인 아들과 하루종일 씨름하다보면 집안일 하는 것도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하는 순간이 J씨에게는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는 휴식시간. 하지만 오늘도 남편은 회사에 일이 남아 야근을 해야 한단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기고 있다. '혹시?'하는 의심이 생긴 J씨. 화상전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목소리 통화만으로 "아직 회사야. 일이 너무 많네."라고 둘러대지만 주변은 떠들썩하다. 예전같으면 대충 둘러댈 수 있는 상황이지만 화상전화에는 '꼼짝마라'. "지금 있는 곳 화면 좀 비춰봐."라는 J씨의 요구에 남편은 한참을 머뭇대더니 화상통화를 연결한다. J씨의 휴대전화에 호프집 전경이 떠오른다. "미안. 대학 동기 녀석이 고민이 있다고 술 한잔 하자는데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 주말이면 독서실에 간다며 늘 집을 비우는 L군. 평소 같으면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놀이터에서 농구라도 하고 있겠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독서실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늘 밖으로만 도는 아들이 미덥지 못했던 엄마가 화상전화기를 사 들고 온 것이다. 벌써 시험전화를 해 본다며 엄마에게 2번이나 전화가 왔었다. "아들, 이거 너무 좋다.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다 보이니까 엄마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L군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늘 감시자 한 명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다. 앞으로 고등학교 3년 생활이 막막해진다. 내게 과연 땡땡이는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 고민 해결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상통화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뉴스에 거짓말이 탄로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가장 큰 고민은 남성들에게 있다. 저녁 술자리의 '알리바이'가 이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 "화면으로 보여줘."라는 아내의 한 마디에 모든 거짓말이 탄로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연인들의 애정 전선에 먹구름이 낄 우려도 있다. "오늘은 회사에 일이 많아서 안돼."라며 여자친구의 데이트 요구를 적당히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이젠 불가능하다. 당연히 바람피는 것은 상상불가.
이런 걱정을 하는 이들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대체영상 서비스. 자신의 모습만 놔 두고 배경은 건전한 사무실이나 도서관 등으로 바뀌치기 할 수 없냐는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상당수다. 불행하게도 이런 대체영상 서비스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현장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대체영상 서비스는 개발돼 있지 않은 것.
KTF 대구지점 박정춘 과장은 "대체영상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거짓말을 조장한다는 반대 여론도 있겠지만 앞으로 화상전화 사용자가 급증하고, 대체영상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라며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컬러링이나 목소리 변환 등의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개발된 것처럼 수요에 의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상전화라고 해서 반드시 영상으로 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 통화료의 3~4배에 달하는 통화료를 지불해 가며 굳이 영상통화를 고집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것. 목소리 통화가 기본이 되고 여기에 부가적으로 서비스 되는 것이 영상통화. 그래서 미리부터 알리바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영상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대화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소 얼마나 두터운 신뢰감을 쌓아놓느냐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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