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을 느끼지 못해요' 미각장애

산해진미가 그득하게 차려져 있어도 도통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애주가이면서 미식가임을 자처하던 직장인 조미상(남'47)씨는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좋아하던 홍어회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으며 혀도 '남의 살'같이 느껴져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 후 조씨는 병원에서 '미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미각은 입에 들어온 음식이 먹을 것인가, 먹지 않을 것인가, 또는 먹어도 되는지, 먹어선 안 되는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감각정보를 제공하는 관문. 그러나 최근 들어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이전의 맛보다 감각이 떨어진다든가, 특정 맛에 대해 미각을 잃었다든가, 단맛이 떫게 느껴지거나 모든 음식이 짜게만 느껴지는 이상미각을 호소하는 미맹(味盲)환자들이 늘고 있다.

◆맛은 어떻게 느끼나=혀를 자세히 보면 표면에 작은 돌기형태의 유두가 수없이 돋아나 있고 이 속에 말초기관인 맛봉오리가 있다. 혀를 비롯해 구강, 인두, 후두에 분포한 양파모양의 맛봉오리는 미각세포가 모인 곳으로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내는 물질을 감지해 그 고유의 맛을 느끼게 한다.

미각세포들은 약 10일의 평균수명을 갖고 있으면 후각세포처럼 기저 세포층에서 계속 재생된다. 흔히 미각세포들은 후각과 같은 다른 자극이 없는 한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 4가지 맛을 기본적으로 감지한다. 매운 맛은 엄밀히 말해 맛이 아니라 아픔에 관여하는 통각이 이를 받아들인다.

혀가 특정한 맛을 느끼는 부위가 따로 있다는 과거 생물교과서의 맛 지도는 잘못된 상식으로 특정 맛에 대한 민감도가 혀의 위치에 따라 약간 다를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혀 전체에서 모든 맛을 느끼는 셈이다.

◆미각과 후각의 관계=독한 감기에 걸려 코가 심하게 막히면 무얼 먹어도 쓰게 느껴지거나 이도 저도 아닌 맛으로 인해 입맛이 더욱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 미각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 중 미각기능의 실질적인 감퇴보다는 후각장애로 인한 감각의 혼돈 때문에 "맛을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혼돈은 방향성 물질이 코와 입을 통해 후각 수용체에 도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후각에 장애가 있으면 입에 들어온 음식의 향과 맛을 코에서 느끼지 못하게 됨으로써 미각장애를 호소하게 된다.

◆미각장애의 사회'환경적 요인=외식과 패스트 푸드, 가공식품의 증가는 맛을 규격화함으로써 다양한 미각을 둔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미각은 경험과 학습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식을 접해 섬세한 미각을 갖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노령인구의 증가도 미각장애질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감각은 상대적으로 둔화될 뿐 아니라 각종 노인성질환으로 인해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양이 늘어난다. 이런 종류의 약을 오래 복용하면 약이 몸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미각세포재생에 중요한 역할은 하는 미세 영양소인 아연(Zn)의 소모가 심해지면서 자연히 맛에 둔해지게 된다.

풍부한 미각경험은 안정된 정서와 신체적 건강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맛을 내는 물질이 많이 녹아나오고 침 분비가 증가되도록 음식을 잘, 오래 씹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같은 맛을 자주 먹다보면 그에 대한 미각이 줄어들므로 음식을 번갈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전통적인 한식은 이런 점에서 맛의 섬세성을 불러일으키는 최상의 식단이 된다.

도움말·대구가톨릭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예미경 교수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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