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와츠와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을 맡은 페인티드 베일은 서모셋 모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19세기 초, 유럽의 동양행이 계속되던 즈음 그 질풍노도의 역사가 두 사람의 사랑 속에 융해되어 있는 것이다. 의사인 페인과 그의 아내 키티가 경유하는 사랑의 여정은 당대의 역사만큼이나 아이러니컬하고 격동적이다. 21세기, 2007년에 보는 그들의 사랑이 애틋하고 가슴아픈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한 파티 장소에 초대된 페인 박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시작한다. 천천히 계단에서 내려오는 여자 키티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페인, 그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무엇인지 정체모를 일상의 억압을 느끼던 키티는 그를 사랑한다기 보다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혼에 응한다. 짐작하다시피 이들의 결혼 생활은 이 이율배반적인 서로의 꿈으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격정적 삶을 원하는 키티와 안정적이면서 온화한 일상을 원하는 페인은 어쩌면 그 근원적 본성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차이는 결국 결혼 생활에 불온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만다. 아내 키티가 다른 남자를 허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바람둥이에게 유혹당한 키티는 남편 페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문제는 상대방 남자에게 키티는 그저 잠깐의 놀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부터 페인과 키티의 사랑은 증오의 늪으로 전복되고 만다. 그녀를 증오하지만 그만큼 사랑하기에 닥터 페인은 스스로와 키티에게 고통을 주고자 노력한다. 마치 그녀를 체벌하듯 페인은 콜레라가 창궐한 시골 오지로 자원한다.
중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여정은 사랑이란 결국 오해 위에 쌓여진 이해임을 보여준다. 상대방이 건네는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마치 외국인을 대하듯 서로를 바라본다. 그녀가 왜 카드놀이를 좋아하는지 지성적인 남자 페인은 이해하지 않으려하고, 왜 남자가 그토록 수줍어하며 조심스러운지 열정적인 키티는 못마땅해한다.
주연배우는 물론 제작까지 맡은 에드워드 노튼은 사려깊으면서도 양가적인 닥터 페인의 면면을 훌륭히 재해석해낸다. 아내에 대한 섬약하지만 끈질긴 애증을 보여주는 그는 수채화처럼 서정적인 이야기 속에 동물적 야수성을 흩뿌린다.
영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중국 그곳으로부터도 깊숙이 숨은 오지에 가서야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사랑에 남겨진 유효기간은 너무도 짧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두 게이가 서로를 사랑하고, 잊고, 지워내기 위해 먼 반대의 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했듯이 페인과 키티 역시 멀리 떠난다. 오해가 지워지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허물어지는 아이러니 속에서 사랑의 비의는 그 숭고함을 빛낸다. 어쩌면 그렇게 사랑은 저 혼자 빛나는 매혹일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간다 해도 사랑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그 앞에서 무릎꿇고 만다. 부재하는 순간 그 의미가 가슴 깊이 들어찰 수밖에 없는 사랑의 비의, '페인티드 베일'은 그 비밀에 대한 우아한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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