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도의 일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후 한 학급에 20% 정도의 학생 명단을 교사에게 줬다. '학업성취도가 높을 것 같은 학생들'이란 제목을 달았다. 그 20%의 학생들은 지능검사와는 상관없이 교사 모르게 임의로 선정했다. 하지만 8개월 후 똑같은 검사에서 그 20%의 학생들의 지능 점수가 높게 나왔다. 물론 그들의 성적도 높아졌다.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흔히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이야기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대표적인 경우다. 강한 희망은 현실이 된다는 이론이다.
지금 '자기충족적 예언'이 가장 필요한 곳은 3연패에 빠진 프로축구 대구FC다. 대구FC는 정규리그 첫 게임에서 FC서울에 패한 뒤 지금까지 3승2무로 한 번도 지지않았던 인천 유나이티드에 1대2로 패했다. 이어 14일 컵대회 경기에서도 인천에 연이어 졌다. 변병주 감독을 영입하고 새로운 분위기로 출발한 터라 충격이 클 법도 하다. 무엇보다 1승이 아쉬운 터다.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던 변 감독도 3연패 후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무장을 새롭게 주문할 수밖에 없을 만큼 1승이 다급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변 감독의 '재미있는 축구, 자율적인 선수단 운영' 소신이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사실 올들어 대구FC는 많이 변했다. 단장부터 시민들 가까이 가는 구단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문화 서포터스'를 결성해 홈 경기 때 공연과 지역봉사 연주활동에도 나서기도 했다. 자본잠식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해는 흑자를 내야한다는 절박함에 선수들의 승리수당까지 줄인 마당이다.
다같이 1승을 목말라 하며 대구FC를 응원하는 시민들도 단장이나 감독의 마음과 다를 수 없다. 3연패임에도 대구FC 홈페이지에는 감독과 선수를 다그치는 글들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격려의 글들이 더 많다. 지난해 무승부만 해도 욕설이 난무하던 것과는 판이한 상황이다. 팬들도 시민 구단의 어려움과 변 감독의 스타일을 알고, 어려움을 감수한 선수들을 믿고 있다. 그래선지 올들어 개인 후원도 줄을 잇고 있다.
이젠 감독도, 선수들도, 시민들도 대구FC의 1승을 향한 '자기충족적 예언'에 한번 빠져보는 건 어떨까. 이미 우리는 외환위기와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기충족적 예언'의 마법을 경험해봤다. 대구FC의 승리를 향한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감독이나 선수들의 소망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대구시민들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그 꿈은 이루어진다. IMF 때 위기극복을 꿈꾸며 금반지를 들고 그 긴 행렬에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4강 꿈을 꾸던 그런 '예언'이 필요할 때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컴퓨터게임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다시 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오랜 잔영으로 남아있던 장면이다. 존 키팅 선생님으로 열연한 로빈 윌리암스가 전통적인 기숙학교에 다니는 잘 길들여진 부유층 학생들에게 "오늘에 충실하라."며 그들의 삶을 바꾸게 한 한마디다.
요즘은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즐겁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많이 쓰여진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든, 카르페 디엠이든 결국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말들이다.
프로축구는 아직 시즌 초반이다. 1승에 기뻐할 일도, 1패에 상심해 할 일도 아니다. 패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다보면 1승도 오고 대구FC의 목표인 6강 플레이오프도 따라올 수 있다.
지금 변병주 감독에게, 선수들에게, 팬들에게 필요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무엇일까. 때마침 오는 일요일인 18일 오후 3시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구FC 홈경기가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자기충족적 예언'을 믿고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달려가 보자. 1승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기다리고 있다.
박운석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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