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시네마 천국에 가다/ 이경덕 지음/ 뿌리와 이파리 펴냄
신화(神話)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체험"이면서 "한 사회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기억이며 함께 꾸는 꿈"이다. 한 민족을 통틀어, 때로는 전 세계인의 생각에 따라 공통으로 놓여 있는 신화는 그래서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만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실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문학에도 신화의 흔적은 상당히 남아 있다. 영상 예술인 영화도 근본적으로는 서사 구조를 띄고 있기에, 그 텍스트를 이루는 이야기에도 인류 문명의 원형(原型)이 담긴 신화는 많은 영향력이 있다. 지은이는 "(원체험과 추체험의 대화라는) 신화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현대의 대표적인 장르가 바로 영화"라고 확신한다. "영화를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례를 치르는 것"이라고까지 한다. 그리고 '지난 세기말과 금세기 초에 신화에 한 걸은 더 다가선' 영화를 옛 이야기인 신화와 접목시켜 해석하고 있다.
7개의 주제별로 살펴 보는 영화로는 '이터널 선샤인'(시간의 유한성과 기억)이나 '음란서생'(욕망), '다빈치 코드'(비밀), '유령신부'(영원 회귀의 삶)처럼 익숙한 작품도 있다. 그러나 '스테이'(시간의 유한성과 기억), '에로스'(사랑), '펭귄: 위대한 모험'(축제와 의례) 같이 잘 안 알려진 작품도 같이 다뤄지고 있다. 그만큼 영화의 텍스트를 읽을 재료로 거론할 수 있는 신화가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권태'로는 제우스와 세멜레의 이야기와 묶어 신과 인간의 경계를 읽어내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는 중국 신화 예와 봉몽의 사례를 들어 오만과 욕망의 어두운 길을 설명한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인도 신화가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이미 '신화 읽어주는 남자',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등으로 신화 관련 작업을 꾸준히 해온 지은이에게 신화는 이론적인 비평과 해석물이 아니다. 대신 "영화를 핑계로 신화의 세계를 함께 거닐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듯이 신화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돋보기를 들이댄다. 그리스·로마는 물론 한국(바리데기), 중국,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켈트와 북유럽, 아직은 낯선 인도·태국·마야의 신화까지 끌어들인 지은이는 이 무궁무진한 신화의 세계를 가볍고 경쾌하게 살피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신화가 우리 생활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프로이트가 꿈을 해석하기 위해 그리스·로마 신화의 숱한 인물을 끌어들였듯 지은이가 인용하는 신화 속의 숱한 주인공들과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 등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00여 분의 시간 동안 그저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영상의 세계에 주목했던 영화의 이면에 깔려 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은 "서구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 새로운 신화를 원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는 아직 한국 신화를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는 지은이의 바람도 담고 있다. "한국 문화가 세계화 속에서 빛을 잃지 않으려면 한국 신화를 읽어야 하고, 한국 영화가 이제 질적인 면에서 비약하기 위해서는 한국 신화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300쪽. 1만3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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