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바다는 넓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은 해변에 밀려드는 바닷물만 볼 뿐이다. 책이라는 것도 그렇다. 한 해에도 전 세계에서 수천만권의 책이 출간된다. 전혀 다른 언어의 책에서 풍겨오는 지식의 향기는 바다에 몸을 싣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대구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 영문으로 된 책을 냈다. 대구 아메리칸 스쿨(미국인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더글러스 B. 쿡(66) 박사의 'Good News:a Poem'(Geo 커뮤니케이션 펴냄). 빼곡하게 들어찬 활자와 문학적 암시로 가득한 시어가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책이다.
'Good News:a Poem'은 제목대로 시집이다. 그러나 얇은 국내 시집과 달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처럼 방대한 분량의 창의적인 시로 이뤄져 있다.
시를 통한 지적 '수다'라고 할까. 철학, 역사, 종교, 문학의 박식함이 현학적 독백으로 가득 차 있다.
"쉬운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고의 의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을 겁니다."
글의 호흡은 8비트 운율이다. 그는 "리듬이 묻어나는 시를 좋아한다."며 "이 책은 좋은 말이 좋은 순서로 정렬돼 있다."(good words in good order)고 했다.
"도대체 믿는 다는 것이 뭘까요. 그것이 진실일까요." 그는 '지식'에 대한 모든 주장들을 비틀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기 때문.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이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가 평생 고민한 지식과 인간, 그리고 철학과 종교에 대한 성찰과 함께 서구 문화에서 유명한 작품을 분석하고, 또 문제점도 들쳐 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금동미륵반가상을 합성한 표지처럼 동서양을 망라한 문화적 관심과 철학적 위트와 풍자도 묻어난다.
미국에서 태어난 닥터 쿡은 21세에 유럽으로 건너가 23년간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각국에서 생활했다. 그는 영어, 이탈리아어, 독어, 불어, 라틴어 등 5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리스어를 포함해 6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쿡뉴스닷컴(www.cooksnews.com)도 운영하고 있다.
대구에 온 지 올해로 15년 째. 해외 출판사를 마다하고 대구에서 출간한 것도 "대구에 애착이 깊고 앞으로 많은 시간도 대구에서 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셈하는 것 외에는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학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6개 국어를 유지하는 것도 엄청나게 바쁜 일"이라며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달에 나온 이 책은 영국 캠브리지대 비교문학과와 경북대 영문학과, 경북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이 단체로 구입하는 등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는 24일(토)과 4월 14일(토) 오후 3시에는 대구 교보문고 3층에서 독자와의 만남도 연다.
그는 "대구의 독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도전과 즐거움 두 가지를 선사하는 흥미로운 책"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대구의 독자를 '지식의 바다'로 초대했다. 690쪽. 2만 7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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