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지난 2월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출판사에서 기획물로 책을 내고 있는데 그 세 번째로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워서 그렇게 하겠다고 응락을 하고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받아 내려왔다. 첫 번째 책은 곽재구 시인의 시선집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이고 두 번째 책은 안도현의 시인의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였다.

안도현은 서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문학공부를 하면서 저는 눈에 띄는 좋은 시가 있으면 꼭 노트에 필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베낀 시가 대학노트로 네 권쯤 됩니다. 그 노트는 저 혼자만 소장한 훌륭한 시집이었고, 시공부의 지침서였고, 문학청년의 고독을 옆에서 달래주던 애인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도 그는 한 달에 천여 편의 시를 읽는다고 말하면서 시를 읽는 이유를 첫째 즐겁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시를 읽는 동안 자신의 정신과 상상력을 녹슬지 않게 하려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신의 자극제로 시를 복용하면서 스스로 문학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의도라는 말이다.

물론 시라는 것은 시인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 어떤 시라도 그것을 쓴 시인은 정신적 고뇌와 번민을 거듭한 뒤에 출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어떤 시가 좋은 시이고 어떤 시가 안 좋은 시인지를 구분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섣부르게 안 좋은 시로 분류된 시의 시인은 자신은 목숨을 걸고 쓴 것이 그렇게 분류된 것에 매우 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에 수만 편씩 발표되는 시들을 보면 어느 정도 좋은 시를 가려 낼 수 있는 눈이 있기 마련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먼저 시가 한편 들어가고 시인의 간단한 평이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진작가 김기찬님의 사진이 하나 들어간다.

'가까스로 저녁에야 // 두 척의 배가 /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정끝별 '밀물')

이 시에 대해 "이런 풍경이 도처에 가득하다면 세상은 태평성대와 다름없으리라. 아주 맛깔나는 시다. 여기서 '배'는 두 개가 겹쳐져 있다. 하나는 저녁의 항구에 닻을 내리는 배요. 나머지는 발가벗은 인간의 몸 아래쪽의 배다. 이 즐거운 언어유희를 일단 눈치 챌 수 있어야 시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두 줄의 절대긍정은 문맥을 잘 짚어볼 필요가 있다." 라고 쓰고 있다.

서정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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