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게임키드'였던 A씨는 1980년대에 들락거린 동네 오락실을 추억한다. 50원, 100원 동전을 넣고 즐기던 갤러그, 야구, 테트리스…. 땅거미 지는 줄 모르고 동네 오락실에서 놀다보면 주머니 속의 용돈은 어느새 오락기로 빨려들어가고 없었다.
신입사원 시절이던 1990년대 초, 그는 반 년치 월급을 털어 286컴퓨터를 샀다. 배불뚝이 흑백 모니터에다 단조로운 전자음이 삑삑댔지만,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게임 '페르시아 왕자'를 할 때면 마치 자신이 공주를 구하는 영웅이라도 된 듯했다. 왕자의 부드러운 몸동작과 섬뜩한 칼날 함정을 보면서 그는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2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게임키드는 어느덧 중년이 됐다. 자녀들 성원 때문에 최신 사양의 PC와 최신 콘솔 게임기를 샀다. 그런데 자녀의 등너머로 구현되는 요즘 게임의 화면을 보며 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옛날 동네 오락실과 286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공상했던 그림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게 게임이야? 실제 사진이야?"
◆게임이야? 실사야?
독일의 게임회사인 크라이텍(Cry Tek)은 지난 14일 자신들이 개발 중인 FPS(1인칭 슈팅) 게임 '크라이시스'의 스크린샷을 선보였다. 관심을 끈 것은 게임 속 그래픽과 게임의 무대가 된 실제 풍경을 비교한 사진들. 어느 것이 게임이고 실제 풍경인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
게임 그래픽이 실사에 육박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요즘 출시되는 게임들을 보면 고화질(HD) 수준의 그래픽 품질과 5.1 채널의 입체음향을 제공할 정도로 실감이 넘치는 것들이 많다.
미국의 게임사인 EA가 지난해 출시한 권투 게임 '파이트나이트3'는 실제 권투 경기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캐릭터들의 피부 주름과 머리카락이 세세하게 묘사되며 경기 라운드가 거듭되면서 캐릭터들의 얼굴과 몸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미국 에픽사의 '기어 오브 워'는 질감 넘치는 역대 최고 수준의 그래픽과 게임성을 보이며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콜오브듀티3'를 하고 있자면 마치 포탄이 떨어지고 탄피가 떨어지는 진짜 2차세계대전 전장에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픽 vs 게임성
실사에 버금가는 게임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것은 하드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에서 가능한 화면을 요즘의 최신 컴퓨터와 콘솔 게임기는 실시간으로 처리(렌더링)해낸다.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져 이제는 웬만한 그래픽으로는 주목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개임 개발사들은 그래픽 향상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래픽이 좋으면 게임이 더 재미있어질까. 이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사용자마다 취향이 다르고 게임회사마다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 포털 루리웹을 보면 '그래픽이 좋으면 눈이 즐겁기에 게임 자체가 즐거워진다.'(ID: 다깡)는 의견과 '판매량 순위가 그래픽 좋은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래픽이 전부는 아니다.'((ID: MB_R171)는 견해가 엇갈린다.
◆영화 수준의 게임은 언제?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을 보면 놀라운 질감의 컴퓨터그래픽에 감탄하게 된다. 1억 4천만 달러가 투입된 SF영화 '파이널판타지'(2001년작)는 아예 모든 배우와 배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 수준의 그래픽을 게임에서 구현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구의 게임개발업체인 라온엔터테인먼트의 그래픽팀 윤혁제(32) 씨는 "2, 3년 정도 지나면 영화 '킹콩' 수준의 그래픽을 게임에서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PC vs 게임기】
콘솔(비디오)게임 시장에서는 엑스박스360(마이크로소프트)과 플레이스테이션3(소니), 위(wii·닌텐도) 등 3기종이 차세대 주역 게임기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엑스박스360과 플레이스테이션3은 고화질TV 시대에 걸맞은 화려하고 실감 넘치는 그래픽과 사운드는 물론이고 PC에 버금가는 온라인 환경을 제공한다. 닌텐도의 wii는 그래픽 사양이 위 두 기종보다 떨어지지만 혁신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의 콘트롤러와 게임적인 묘미를 갖추고 있어, 인기를 몰고 있다.
그래픽만을 놓고 볼 때 콘솔 게임기와 PC 중에 어느 것이 더 훌륭한 화면을 보여줄까.
엄격히 말하자면 현존 최고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가정용 기기는 PC다. 더욱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다이렉트X 10 기술을 활용할 경우 컴퓨터 사양만 제대로 받쳐준다면 콘솔 게임기를 능가하는 고품질의 화면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PC로 엑스박스360이나 플레이스테이션3를 능가하는 그래픽을 즐기려면 지출이 만만찮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컴퓨터 가운데 최고급 사양을 골라야 하며 이 경우 그래픽카드만 해도 웬만한 콘솔게임기보다 비싼 것을 달아야 한다.
업그레이드 유혹에 시달리지 않고 게임을 즐기려면 콘솔 게임기를, 다용도로 활용하려면 PC를 선택하는 게 좋다. 리니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최고사양의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구동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김해용기자
【키워드】
★ 게임 엔진
게임 속의 화면 효과와 캐릭터의 움직임, 효과음 등을 수작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게임 엔진이다. 게임 엔진은 게임 제작을 쉽게 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도구(tool)를 통칭한다. 그래픽 및 소리 효과, 캐릭터 움직임, 사물 반응 등 게임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이 원활하게 구동되도록 돕는다.
세계적인 게임 엔진으로는 미국 에픽사의 언리얼3 엔진을 비롯해 하복(Havok)사의 물리엔진, 크라이텍의 크라이시스 엔진 등이 꼽힌다. 언리얼3 엔진의 경우 국내의 한 게임사가 게임 개발용으로 10억 원의 라이선스를 들여 수입했다고 한다.
한 국내 게임업체가 최근에 개발한 게임 엔진은 1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 다이렉트X
사진·음향·동영상 등을 구현하는 컴퓨터 하드웨어는 만드는 회사마다 특성이 다르다. 다양한 하드웨어 환경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환경에 맞추려면 특정한 제어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것이 다이렉트X다.
다이렉트X는 1995년 첫 도입돼 현재 윈도 플랫폼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9.0버전이 가장 많이 쓰이며 최근 출시된 새 운영체제인 '윈도비스타'에서는 10버전이 탑재됐다.
★ FPS
'First Person Shooting'의 약자로 1인칭 슈팅을 뜻한다. 게임에서 1인칭이라는 것은 게임 화면이 곧 플레이어의 시각이 된다는 것이다. 슈팅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총싸움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FPS는 최고의 그래픽 기술을 요구한다. 플레이어의 눈(모니터)에 비치는 것이 현실과 비슷할수록 몰입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컴퓨터나 콘솔게임의 진화는 FPS가 이끌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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