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링컨 팔이 아무리 길어도

손학규 한나라당 대권주자가 競選(경선)에 불참하고 탈당을 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경선시기나 선거인단 숫자 등 경선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조건이 유리하면 느닷없이 경선불참 얘기가 나올리 만무해서다.

반대로 또 한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김홍업)은 전라도 어딘가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부정한 돈 받아먹고 감옥까지 갔다 온 낯부끄러운 처지임에도 출마를 선언했다. 그것은 곧 당선될 만한 조건이 유리하다고 계산되지 않았다면 나설 리 만무한 반대의 경우다.

두 사람의 상반된 경우를 보면서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결투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끄집어내 보자. 링컨이 쉴즈라는 노련한 정치가를 몰래 숨어서 비난하는 익명의 글을 뿌렸다가 들켜 결투신청을 받았을 때, 결투에 자신 있던 쉴즈는 권총이든 칼이든 링컨 맘대로 정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팔이 유난히 길었던 링컨은 총보다는 長劍(장검)이 더 유리한 조건이 될 것 같아 칼을 선택했다. 그러나 신출내기 변호사의 검술실력이 제대로일 리 없었다. 십중팔구 쉴즈에게 찔려죽을 지경이 된 링컨은 다급하게 육사 출신 장교에게 검술지도까지 받았지만 그의 긴팔도 승자의 조건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결투는 중재에 의해 취소됐다. 가슴을 쓸어내린 링컨은 그 이후 대통령이 된 뒤 암살될 때까지 어떤 경우든 남을 비판하거나 악평하지 않았다. 그가 얻은 교훈은 '싸움'에 있어서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싸움의 '조건'이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재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의 명분과 싸움에서 얻게 되는 가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긴팔이라는 '조건'에만 몰입돼 정작 결투의 원인인 자신의 不德(부덕)은 잊고 있었던 것을 깨친 것이다. 손학규의 후퇴와 김홍업의 공격을 짚어보면 두 사람 모두 싸움의 '조건'에만 몰입돼 '본질'은 잊고 있음을 읽게 된다. 한쪽은 조건이 불리하다는 계산 아래 지는 싸움은 피하고 다른 길로 살려는 자기 보호에 몰입돼 야당집권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잊고 있는 경우이고 한쪽은 조건이 유리하다는 계산에만 몰입돼 민심에 비친 자신의 그늘진 모습을 못 보고 있는 경우다.

경선은 어차피 같은 룰에 의해 치러질 수밖에 없다. 씨름판에서 어느 정도의 샅바 싸움은 있을 수 있되 심판의 결정에 承服(승복)해야 좋은 경기가 되는 것과 같다. 그러잖아도 국민들 눈에는 한나라당의 경선게임이 옹졸한 샅바 싸움으로 조금 지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불참은 본인의 자유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선수가 경기장 안에 들어와 있는 분위기에서 '조건'의 문제로 퇴장한다면 뒤늦은 자유의사는 퇴색된다. 천하장사쯤 되려는 프로는 상대가 먼저 잡고 싶은 대로 잡게 허리를 다 내주고도 모래판에 우뚝 서는데 대권주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샅바 따지는 잔씨름은 관중의 박수를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김홍업 씨 경우도 민심을 벗어난 도전을 했다. 아버지(김대중)의 눈치를 보는 건진 모르나 우리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하고 텃밭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은 후보를 맞세우기는커녕 영입을 고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조건 치고 이런 好(호)조건이 없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그 '조건'이란 걸 생각해보라. 검은 돈 받아쓰고 유죄판결을 받고 나왔다면 당분간 국민 앞에 사죄와 반성의 모습이나 보이는 게 옳다. 누구의 '백'인지 다 아는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곧바로 국회의원 도전에 나서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명분 있는 싸움인지를 省察(성찰)해 보라.

경쟁후보 안 내주는 정치판의 선심과 조건들이 링컨의 긴팔처럼 얼핏 유리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심은 그것을 공평한 조건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볼 때는 유리한 조건이라도 양심과 민심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팔 긴 링컨이 웃을 '조건'들이다. 왜이리 염치가 없어져가나.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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