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어린 엄마'

책의 내용이 현실을 너무나 있는 그대로 담아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그 책을 권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어려운 처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찌우는 교훈을 찾는다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아이들에게 순수를 일깨워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늘진 곳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고 싶은 어른으로서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새로 나온 동화집 '어린 엄마'(조은주 글/ 낮은산 펴냄)를 읽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열여덟 살 언니와 여덟 살 막내 여동생, 집을 나간 둘째 남동생이 주인공이다. 배경은 달동네 월세방, 한겨울이다. 아버지는 술병이 나서 병원에 누워 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언니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새벽에는 우유 배달, 낮에는 회사에 출근해 심부름을 하며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화자(話者)인 막내의 눈에는 이런 언니가 꼭 '어린 엄마' 같다.

최루성으로 흘러갈 법한 이야기는 첫 페이지부터 아주 담담하게 그려진다. 새벽 우유 배달을 다녀와 이불 속으로 파고든 언니를 잠결에 안아주면서 동생은 이렇게 생각한다. '겨울바람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꽁꽁 언 손도 내 작은 두 손으로 감싸 줍니다.' '낮에 굶지 말고 라면이라도 꼭 끓여먹으라.'는 언니를 배웅하는 모습도 담담하다. '담에 가려졌다가 전봇대에 가려졌다가 잠깐씩 언니가 보입니다. 그리고 영 다시는 안 보입니다. 나는 언니가 보이지 않아도 손을 흔듭니다. 그러다 보면 코끝이 찡합니다.' 동생은 아마 추워서일거라고 생각한다.

방값을 들고 집을 나가버린 둘째는 열흘 만에 배가 고파 잠깐 돌아온다. 여동생은 괘씸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 골목으로 나와버린다. 다시 와 보니 오빠는 또 나가버렸다. 어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밥은 먹고 나갔을까 걱정한다. 저녁에 돌아온 언니는 둘째가 왔다 간 사실을 안다. 깨진 부엌 창문에서 펄럭이던 비닐이 어느새 접착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돼 있다. 둘은 주인집 할머니가 월세 독촉하러 왔다 놓고 간 호박죽을 맛있게 나눠 먹고 잠이 든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 동화집의 주인공은 일흔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눈 먼 할머니, 뇌성마비에 걸려 누워 지내야 하는 아이, 정신지체아 등 그늘진 이웃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마주치지만 안타까움의 시선만 보낼 뿐 행동으로 같은 편에 서기는 어려운 이들. 15년간 글을 써 왔다는 저자 역시 '그들 편이 되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대신 그래도 노력해 보고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 보자고 손을 내민다.

방학 중 결식 아동들이 식권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가 매년 나온다. "만날 집 밖에서 돈가스나 오무라이스,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 행동에 대해 일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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