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포항 사투리

"오늘은 포퓰리즘적 신개발주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제법 분필가루를 마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학생들도 긴장된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 고3 학생들이라 그런지 수업 참여도 적극적이고, 준비도 훌륭하다. 나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이나 더 크고, 목소리도 굵은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태도가 여간 대견하지 않다.

나의 교직 생활은 13년 전 포철교육재단의 중학교에서 시작했다. 근무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이곳 아이들이 포항말을 쓰지 않고, 서울말을 쓰는 것이었다. 포항에 이런 별천지가 있나 싶어 놀랐지만, 오히려 학생들에게 미치는 교육의 힘에 경외심을 가졌다. 포항이면서 포항사투리를 쓰지 않는 이 학교에서 나는 10년이 넘은 지금도 긴장을 하면서 수업을 한다. 명색이 국어 교사여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발음과 표준어로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근 후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쓰던 사투리가 불쑥 튀어 나올까봐 조심한다.

난 포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 학창시절만 서울에서 보낸 편이다. "~했는교?, ~하시더." 말씨를 쓰는 사람만 보면 혹 포항사람인가 해서 귀가 기울여지고 발걸음이 멈출 정도였다. 가끔씩 명절에나 들르는 포항의 죽도시장은 포항사투리의 경연장이다. 생선파는 아주머니들의 "아저씨요, 좀 사가소. 물 좋심더!" 소리에, 나 역시 "아지매, 이 도다리 얼만교?"하며 자연스럽게 시장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포항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근무하던 첫 해의 일이다. 라일락이 활짝 핀 늦봄 날씨 때문인지, 수학여행 후 여독이 안 풀려서인지 아이들이 모두 축 늘어진 날이었다. 나 역시 바깥 경치에 자꾸 눈길이 쏠렸다. 수업 분위기는 전적으로 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껏 목소리에 힘을 주고 열을 내며 수업을 했다. 더구나 따분한 문법 수업이었기에 더욱 열심히 설명했다.

"국어의 품사가 몇 개니?"

나의 조심스러우면서도 긴장된 목소리에 반해, 아이들은 늘어진 목소리로,

"아~호옵~개애~요오~."

하고 대답을 한다. 나는 판서를 하며 "명사는 문장에서 ··· 역할을 하고, 수사는 ···."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이들도 나의 열기에 눈망울이 또렷해지며 호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신이 난 나는 나머지 품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에 '조사'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데 어느새 칠판은 가득 채워졌다. 더 이상 적을 곳이 없었다. 맨 아래 칸에 판서를 하며 교탁에 가려 안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뒤를 돌아다보며 목에 엄청난 힘을 주고는

"야! 비나(보이니)? 안비나?"

하고 외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고 야단이 났다. 나도 내 큰 목소리에 놀란데다 교실에서 사투리를 써 쑥스러워 아이들과 같이 웃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지만, 수업할 때 가지는 약간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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