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프리즘)시험에 '대박'은 없다

고3 어머니 한 분이 상담하러 왔다. 첫 모의고사를 치고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겨울 방학에 정말 열심히 공부를 시켰다고(학생이 열심히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했다. 같이 그룹지도를 받은 학생은 첫 시험에서 '대박'이 났다고 했다. 아들이 평소실력보다 많이 못 쳤느냐고 묻자, 평소보다 조금 잘 나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부터는 '대박'을 기대하지 말고, 그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라며 그 이유를 좀 길게 설명했다.

대박이란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사람은 흥부전에서 작은 박씨가 큰 박으로 자란 것을 대박이라 한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쪽박의 반대말이라고도 한다. 어디에서 유래되었든 관심 밖의 문제이다. 현재 우리가 별생각 없이 구사하는 대박이란 말의 사용빈도는 아마도 '바다 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도박의 번창과 괘를 같이 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시험을 목전에 둔 수험생에게도 '대박 터뜨려라.'라는 도박판의 말을 해 주는 것이 덕담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말을 사용하는 심리근저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수능시험을 치는 학생에게 찹쌀떡 정도를 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밥주걱보다 큰 삼지창 모양의 사탕을 주며 잘 찍어 대박을 터뜨려라고 격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는 시험을 사행성 도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500점 만점에 평소 300점 받는 학생에게 450점을 기대하는 것은 정상적인 격려가 아니다. 평소 실력만큼의 점수만 받으라고 할 때 학생은 담담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좀 더 좋은 점수가 나올 수도 있다. 300점 받는 학생에게 450점을 받으라고 하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시험이 두려운 것이다.

시험조차도 일종의 도박으로 간주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이런 생각이 만연된 사회에서는 내 아이가 시험을 못 치면 실력보다는 시험 운이 없어서 망쳤다고 변명하며, 남이 잘 치면 남다른 노력의 결실이라고 인정하기보다는 그냥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며 비아냥댄다. 내가 잘못한 것도 남이 잘 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는 페어플레이나 결과에 대한 승복 따위란 있을 수 없다. 상호격려의 미덕이나 점진적인 발전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수험생은 모의고사를 통하여 현재의 상대적인 위치와 취약 부분을 파악하게 된다. 모의고사는 연습이지 실제 수능시험에서 몇 점을 받을 것인가를 예측해주는 잣대가 아니다. '3월 모의고사가 1년을 좌우한다.'라는 말은 악성 루머에 불과하다. 남은 8개월 동안 지난 2년보다 많은 양의 공부를 할 수 있고 상전벽해의 대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대부분 재학생들은 1학기에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면 8월 이후에 성적이 올라간다. 시험에서 대박이란 있을 수 없다. 뿌리고 가꾼 만큼만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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