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古地圖 이야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는 목판으로 찍은 지도와 정교하게 그리고 채색을 한 필사지도로 대별된다. 첩으로 만든 지도, 병풍으로 꾸민 지도, 한 장짜리 지도, 특정 지역을 나타낸 군현지도, 국경의 군사적 중요지역을 나타낸 관방지도, 봉수대를 그린 봉수지도 등 실로 다양한 지도를 다양한 목적으로 제작했다.

오늘날 지도도 그렇지만 고지도 속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영토 문제이며, 고지도를 펼칠 때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되는 것이 울릉도, 독도, 간도, 연해주, 대마도 등 우리 강역과 관계되는 것과 내가 살고 있는 대구·경상도 지역이다.

울릉도, 독도는 조선전도와 강원도도에 분명히 우리 땅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간도는 일본이 1909년에 청나라에, 연해주는 청나라가 1860년에 러시아에 무효조약으로 넘겨준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약 자체가 무효이면 그 내용 또한 당연히 무효인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조선지도 속에 대마도는 그대로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 자료도 상당수 축적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농사짓던 농경민족만이 아니며 고구려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선 후기까지도 지금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지도보다 훨씬 큰 지도를 가진 민족이었음이 가슴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서 답답함으로 변한다. 우리 스스로 무효조약을 인정하는 내용이고, 북방영토를 포기하는 내용으로 헌법이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빠른 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경상도 지도를 살피다 보면 '大邱' 또는 '大丘'로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大丘'가 더 오래된 명칭이다. 달구벌(達句伐)이라는 부족국가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년) 신라에 병합되어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식 표기로 '대구(大丘)'라 표기하게 된 것이다. 모두 '너른 벌판', '큰 언덕'이란 훌륭한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영조 26년(1780년) 유생인 이양채(李亮采)라는 사람이 당시 대구(大丘)의 '丘'자가 공자의 이름자인 구(丘)자이기 때문에 성인의 휘자(諱字)를 쓰는 것이 민망하다 하여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점차 정조·현종 때는 대구(大丘)와 대구(大邱)를 섞어 사용하게 되고, 철종 이후에는 대구(大邱)만을 사용하게 된다. 대구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다.

조현제 (한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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