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에 학생인권 바람)학교마다 두발·복장 등 자율화 봇물

학력위주 사회 풍토가 도입 걸림돌

지난 17일 오전 대구 북구 동변중에서는 학생회장·부회장 투표일을 맞아 지지를 호소하는 마지막 유세가 한창이었다. 교정에 줄지어 선 학생들이 들고 있는 선거 피켓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겠다는 결의에 찬 내용이었다. 학생 회장에 출마한 이한라(15) 양은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두발·복장 규칙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면서도 "자율적이고 개성적인 학교 분위기를 위해 두발, 복장 이외에도 여러 학칙이 학생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밝게 웃었다.

▶학생, 인권을 외치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중·고교생 인권실태 조사결과 인권침해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불만은 두발 형태와 길이에 집중됐다. 실제 대구에서도 두발 규정이 완전 자율화된 학교는 중학교는 전무하고 고교에서는 과학고와 달구벌고뿐이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두발 불만이 끊이지 않을 만하다.

새학기를 맞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생 인권을 강조한 장학 지침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두발과 복장, 체벌과 관련된 것인데 올해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대구는 지난해 과도한 체벌 등 반인권 사고를 여러 차례 경험한 터다. 학생과 학교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대구 동변중은 학내 인권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 학생, 교사가 함께 토론하고 성공적으로 화해의 접점을 찾았다는 면에서 모범 케이스라 할 만하다. 동변중은 2005~2006년 시 교육청 지정 '인권교육 시범학교'를 운영한 바 있다. 시범학교 기간이 끝났지만 두발과 복장 규정을 완화한 개정 학칙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학교 역시 첫 변화는 쉽지 않았다.

"지난해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사자머리'를 한 여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만 보니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머리를 길게 기른 학생이 유난히 많더군요. 인권 시범학교라니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얼마 안 돼 제 스스로 익숙해지더군요. 염려와 달리 두발과 복장이 수업 태도와도 큰 상관이 없었고요." 강현철 동변중 교장은 학칙을 원상복구할까 하던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동변중은 2005년 10월 '앞머리 5cm, 뒷머리 3cm(남학생)', '귀밑머리 5cm(여학생)'이던 두발 규정을 '파마, 염색만 아니면 두발 길이는 자유'라는 내용으로 바꿨다. 3학년 김지연(15) 양은 "다른 학교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똑같은 단발머리가 대부분이어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라."며 "선생님들이 우리들의 인권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행동이나 수업태도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동변중에서는 토요일에 교복이 아닌 자율복장으로 등교해도 된다. 하루만이라도 입고 싶은 옷을 입어보자는 취지다. 학칙을 풀어놨지만 어긋나는 차림을 하고 오는 학생은 없다. 비단 두발, 복장 문제뿐 아니다. 지난해에는 징계 학생에 대한 공고 방식을 두고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여느 학교처럼 교내 게시판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의 인적사항을 처벌 사실과 함께 게재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 끝에 처벌 사실만 적기로 했다. 매주 한 시간 진행하는 '인권 수업'은 이처럼 타인의 인권을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이성일 연구부장은 "무조건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선택권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칙을 완화한다고 해서 교내 분위기가 문란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력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가하면 북구 관음중은 올해 교육부로부터 '학생인권 시범학교'로 지정돼 1년간 운영에 들어간다. 두발, 교복, 체벌 등 학내 인권 갈등 요소가 높은 주제들에 대해 바람직한 모델(학칙)을 만들어보고 그 운영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내용.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이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학교 생활 규정 중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응답이 64%로 나타났고, '선생님으로부터 인권을 무시당했다고 느꼈다.'는 이유로 '두발·복장규제(40%)', '모욕적인 말(30%)', '체벌(19%)' 등을 답했다. 반면 교사, 학부모들은 왕따나 또래 폭력 등 동급생 간의 인권침해 요소가 가장 크다고 답했고, 두발·복장 규제에 대해서는 5~8%만이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응답했다.

장창규 시범학교 담당 교사는 "우리 학교도 여학생은 명찰 위치까지, 남학생은 목덜미를 덮는 정도까지 머리 길이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설문조사 결과처럼 학생들의 불만이 높다."며 "교칙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과 교사가 인권을 주제로 터놓고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 더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채우기 대구시 교육청 장학사는 "올해 학생생활지도 방침은 학생인권의 보호와 신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체벌, 두발·복장 지도, 소지품 검사 등 각종 생활 지도시에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각 학교에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은 학생 인권 되려면

학생 인권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곤혹스러운 것은 현장의 교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최일선에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학생부장'들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학생부장 자리를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한다."는 하소연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권영철 영남고 교사는 "개인적으로 두발을 자유화하려면 교복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년째 학생부장을 맡고 있다는 그는 "교육당국에서는 아주 쉽게 자율화 얘기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면서 "학칙이 자율화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경한 어조를 이어갔다. 머리 길이를 3cm에서 5cm로 완화해주면 10cm로 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 인권보다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는 학생, 교사 서로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번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를 켜놓은 학생을 적발했더니, 그날 하루에 문자를 100통 넘게 보냈더군요. 수업 중에 선생님 얘기를 전혀 안 듣는다는 얘기죠. 일부 학생의 얘기입니다만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할 자세가 돼 있어야 자신의 권리도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창렬 상서여자정보고 교사는 지난해 호주로 연수를 다녀온 뒤로 생활지도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동급생에게 폭력을 휘두른 학생이 학교 안에서 수갑이 채워져 경찰에게 끌려가더군요. 선진국에서는 티칭(Teaching)과 선도 활동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는데 우리 여건에서는 이런 분리가 불가능하잖아요." 이 교사는 최근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여전히 희박한 것은 학력을 위주로 하는 풍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작정 베풀어준다는 식으로 학생 인권을 옹호만 할 것이 아니라, 인권 수업을 강화해 권리와 책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보 구남중 교사는 자로 잰 듯한 규정을 적용하는 학교는 요즘 들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한 해는 교복 바지통을 좁게, 치마길이를 짧게 입는 것이 유행하더니 이듬해는 바지통을 넓게, 치마를 길게 주름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더군요." 이 교사는 무작정 규칙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이 정당하냐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마음을 터놓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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