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뿔은 하나의 상징이다. 생각해보라. 염소에게서 뿔을 빼면 뭐가 남을까. 어디 염소뿐이랴. 소도, 양도, 기린도 뿔을 지닌다. 초식동물에게 뿔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적 비쩍 마른 친구들은 달리기를 잘했다. 뚱뚱한 친구들은 맷집이 좋았다. 이도저도 아닌 친구들은 그 어떤 모멸감에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있었다. 그렇다. 모두 보호색이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 줄도 모른 채 어린 염소는 머리에 달린 뿔로 '톡, 탁, 골 때리며' '끊임없이 티격태격' 논다. 온 가족이 찢어져 팔려갈 지경인데도. 안타깝다. 안쓰럽다. 이런 여린 마음을 감추려고 시인은 말장난(言弄)을 한다. '골 때리며, 풀리그로' 노는 어린 염소들처럼. 그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겠지. 눈여겨볼 만한 건 시어들의 사용법. '각축'과 '각인'의 의미를 뒤집는 것은 기본이고, '새까맣게 어린' 녀석들은 털이 새까만 흑염소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어미 반경 안에서 논다'란 말의 의미도 겹이지만, 비유까지도 하필이면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는 '상사화 잎싹'이다. 햐, 말 다루는 솜씨 정말 기막히구나.
장옥관(시인)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