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자들은 이렇게 본다

몇 년 전부터 서점가에는 '나쁜여자'가 되기를 부추기는 자기개발서가 종종 눈에 띈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배드걸 가이드', '나쁜 여자 쿨한 여자' 등 제목부터도 일단 도발적이지만 내용은 한술 더 뜬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를 쓴 우테 에어하르트는 "착한 여자는 하늘나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며 "아직도 '모나리자의 미소'만이 여자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믿는 이가 있다면 신속히 모나리자 신드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가르친다.

욕망에 충실하라, 필요할 때는 정치적으로 굴어라(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중), 꼬리치는 여자가 아름답다, 여자도 열 남자 마다 않는다(나쁜 여자 쿨한 여자 중) 등 책 속의 작은 제목들만 일단 살펴봐도 소심한 여성은 간담이 졸아들 정도다.

#난 가치있는 인간

직장생활 6년차의 강희경(가명.31.여)씨. 그는 가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런 여성 자기개발서를 읽는다. 책에 씌여진대로 다 실천하고 살기는 어렵지만 읽는 동안만큼은 속으로 삭히고 있던 모든 분노가 치유되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강 씨는 실제로 한 번은 책에서 시키는대로 행동을 해 본적도 있다고 했다. '배드걸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직장에 복수하는 법'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 책에서는 "화장실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하루에 하나씩 몰래 가지고 나와보라. 어차피 회사가 나에게 일한 만큼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당하고 편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강 씨는 어느 날, 한 달에 한 번 회사에서 부서별로 지급되는 볼펜 3통을 남들이 없는 사이를 틈타 몽땅 들고 나와버렸다. 물론 강 씨게에 꼭 아쉬운 물건은 아니지만 이런 '보상행위'를 통해 지금껏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날아가는 홀가분함을 느꼈단다.

"통쾌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기분이 날아갈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 역시 누릴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인간'임을 스스로 위안받는 행위였으니까요."

#잃는 것도 많다

한편에서는 '나쁜 여자'가 신봉되는 세태에 대해 따끔한 질책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점점 더 이기적인 인간형을 조장하는 세상. 하지만 인간 모두가 이기적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회사에서 정말 할 말 다하고 누구나 봐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똑 부러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최영임(가명'32)씨. 그녀는 타고난 천성 때문에 자신도 어쩔수 없이 이렇게 행동하고 살지만 이런 그녀의 모습이 득이 되기 보다는 해가 될 때도 많다고 했다.

"제가 아무리 속은 그게 아니어도 사람들은 '까칠한 여자, 제 멋대로 편하게 사는 여자,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여자'로만 낙인찍어버리죠. 물론 사람들이 저 성격에 대해 일정부분 포기하는 면이 있으니 당장 살아가기에는 수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안한 이미지로 다가서질 못하니 그만큼 잃어버리는 인간관계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세상이지요"

사실, 조직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속에서 이기적인 인간형이 남들에게 인정받고 살아남기는 어렵다. 결국 사람은 행동한 대로 평가받게 마련. '나쁜 여자'라는 타이틀이 자신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발상은 대책없는 나르시시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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