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임을 위해서는?

국제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가 펴낸 퇴계 선생 책에는 조선조 선조 임금과 퇴계 이황의 두 제자인 학봉 김성일·서애 유성룡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선조 임금이 어느 날 經筵(경연)에서 "경들은 나를 전대의 제왕에 비하여 어느 임금과 견주겠는가?"라고 물었다. 한 신하가 "堯舜(요순) 같은 성군"이라고 하자, 학봉은 "요순 같은 임금도, 桀紂(걸주) 같은 폭군도 될 수 있다."고 했다.

선조가 다시 "요순되기와 걸주되기가 어찌 그렇게 같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학봉은 "전하께서는 天資(천자)가 고명하시니 요순 같은 성군이 되시기에 어렵지 않으나 다만, 신하가 옳게 간하는 말을 거부하시는 폐단이 있으시니 실로 염려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선조는 얼굴빛이 변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앉으니 신하가 모두 떨었다. 이에 서애가 "두 사람 말이 다 옳습니다. 요순에 비하는 것은 임금을 그렇게 인도하려는 말이고, 걸주에 비하는 것은 임금을 경계하는 말이오니 다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라고 아뢰자 가까스로 얼굴빛을 고친 선조는 술을 내리게 한 다음 물러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학봉은 선조 때 정사 황윤길을 동행해 부사로 조선통신사로 파견됐다 귀국, 민심동요를 우려해 선조에게 황 정사와 달리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잘못 보고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죽음으로 속죄한 인물.

학봉은 왜가 침입하자 一死報國(일사보국)을 결심, 의병을 모아 진주성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듣기 싫지만 옳은 말은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놓았던 것.

요즘 정치판이 어지럽다. 변절과 배반, 후안무치가 橫行(횡행)하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또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는 현실이다. 탈당과 한 배를 탔던 동료들끼리의 난타전과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이 틈에 전직 대통령 아들은 사면이란 '특혜'도 모자라 아버지 후광을 업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려 하고 있다.

청와대 주변은 또 어떤가. 국사를 함께 보고 同苦同樂(동고동락)했던 대통령과 퇴임 총리가 설전을 벌이고, 대통령을 보좌하던 참모는 물러나 대통령을 공격하고, 퇴임 각료는 자신을 발탁한 임명권자에게 화살을 날리고 있다. 대통령과 한때 운명을 같이했던 한 정당에서는 저마다 난파위기의 배를 버리고 제 살길 찾아 뛰쳐나가고, 인기없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배 밖으로 쫒아내고 또 대통령은 이들과 이전투구다.

바야흐로 선거(2007년 12월 대선·2008년 4월 총선)를 앞두고 '변신과 싸움의 계절'이 도래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甘呑苦吐) 정치판의 흉물스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공무원은 삼류, 정치권은 사류'란 지적이 옳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지만 그래도 대통령 만큼은 참아야 한다. 또 대통령은 싸움판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얼마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새로 임명됐다. 총리도 바뀌었다. 그럼 두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려운 것 아니다. 남은 1년 마무리를 위해 대통령에게 '듣기 좋고 기분 좋은' 소리만 하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학봉이나 서애선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 동안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과 발언은 청와대에서의 원만하지 못했던 의사소통 때문이란 이야기들이 적잖았다. 재임시 서울 언론들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퇴임 후 쓴 책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도 이 문제는 잘 드러난다. "오래된 참모들은 아예 나같은 조언은 하지도 않는다.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를 하더라도 꾸준히 말씀을 드렸다."

따라서 두사람 역할은 분명해진다. 참여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와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임을 위해서, 아니 국민들이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말 해야 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良藥苦口 利於病, 忠言逆耳 利於行)는 옛 말도 있지 않은가.

정인열 정치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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