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의 무덤'

아아 봄날, 누군가 읊은 것처럼 '햇빛은 분가루처럼 날리고,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가는' 봄날의 며칠을 나는 '다소 성마르고 완고하고 고집불통인 데가 있어 대인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하거나 매사에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면이 부족했으며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도무지 물러날 줄을 모르는' 한 남자가 쓴 두꺼운 책을 읽는다.

책의 날개에 찍힌 그의 사진을 보면 위의 인물평이 표정과 자세에 그대로 나타난 듯해 나는 혼자 웃는데, 전에 본 디스커버리판의 수많은 사진들과 그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이는 탓이다. 하워드 카터, 1874년 런던의 한 서민가정에서 11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채 모사화가로 떠돌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여 고고학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다.

투탕카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3천340년 전에 태어난 이집트 18왕조의 파라오다. 하지만 생전의 그는 이집트 역사에서 지워질 뻔한 적도 있는 미약한 권력을 가진(그의 사후에 왕이 된 장관의 섭정을 받았다) 죽음마저 의문에 휩싸인 소년왕이다.

내세를 믿어 의심치 않던 이집트의 거의 모든 왕들은 재위 첫해부터 가장 화려한 자신의 무덤을 축조하기 시작했으며 저 기제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람세스 2세를 비롯해 하트셉수트 여왕 등이 누운 테베의 '왕들의 골짜기'는 그 증거다.

하지만 온갖 진귀한 부장품으로 가득 채운 왕의 무덤들은 도굴을 이집트의 전통으로 만들다시피했고, 고고학자들은 헤로도토스의 '미라 만드는 방법'이나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에 들어있는 왕의 미라와 부장품들을 당시에 발굴한 메렌프타왕의 빈약한 미라 한 구로 그저 상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비웃음을 사면서 20년간 그 골짜기에서 새로 찾아낼 묘가 있다고 생각한 하워드 카터가 거의 완벽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해낼 때까지.

또한 하워드 카터는 그 성격대로 빠른 처리를 요구하는 주변의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의 처리로 0.25%의 망실에 불과한 유물 보존을 이뤄내기도 한다. 3천400여 점의 그 유물은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당시의 이집트 정부에선 억지를 부려 유물의 반을 영국에 주지 않았다!)

하워드 카터는 그후 이집트에서 미술품 상인으로 조용히 지냈다. 이 책은 그 유물들 한 점 한 점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읽다 보면 이 봄날 그 오래된 보물들에 얽힌 꽃거플 같은 이야기들이 당신들의 귓전을 사각사각 스쳐댈지도.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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