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킴은 극중에서 누구나 증오할 만큼 아주 악질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많고 많은 성(姓)중에서 하필이면 김 씨에게 천하의 비열한 악당역을 맡기다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언짢다.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란 미국 드라마 이야기다. 누명을 쓴 채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탈옥시키기 위해 천재 동생이 감옥 설계도면을 온몸에 문신해 일부러 수감돼 탈출시킨다는 흥미진진한 얘기다. 얼마 전 FOX-TV 가 선보인 이래 미 본토는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 한국인들에게도 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가난한 형이 범죄로 벌어들인 돈으로 동생을 대학 보내고 동생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딱 맞는 설정이다. 주인공 스코필드의 이름을 딴 '석호필'이란 이름의 카페에는 이미 수만여 명이 가입해 있고 설날 당일 한 케이블 방송사는 무려 24시간 연속으로 내보냈을 정도니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악역이 '미스터 김'이란 동양인이라는 것이다. 말이 동양인이지 이건 완전히 한국사람이다.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의 차이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 보면 미스터 김은 명백한 한국인이다.
왜 한국의 대표 성씨인 김 씨를 가장 냉혹하고 비열한 악역으로 표현했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방송인 폭스사의 제작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미국 보수언론은 곧잘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왔다. 한국이 그만큼 큰 탓일까?
구조주의적인 연구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언론에서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재구성한 의미를 본다. 특정한 의미를 위해 이데올로기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월남전의 경우를 보자. 미국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거룩한 전쟁이고,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챙기려는 더러운 전쟁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같은 의미과정을 신화(myth)라고 정의했다. 모든 상징은 가치중립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아침시간, 아버지는 신문보고 엄마는 밥짓는다. 화이트 칼라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육체노동자는 트로트를 좋아한다. 미디어는 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상징물을 통해 우리는 인식한다.
1983년 8월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공군에 의해 얼음바다에 떨어졌다. 탑승객 269명 모두 북극해 밑으로 사라졌다. 절대다수의 서구인들은 소련의 만행이라고 봤다. 서방 언론들이 소련의 만행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이란 민간기가 미국 영공을 침범, 미 공군에 의해 격추됐다. 많은 이들은 책임이 기장에게 있다고 봤다. 다수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건을 두고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언론의 프레밍(framing), 즉 틀짓기 탓이다.
사례에서 보듯이 매스컴은 이제 사실의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고 친절하게도(?) 해석까지 해줄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경찰에게 재수사를 요구하기도 하고, 수천 시민에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기도 한다.
매스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대사회에서 도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디어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 언론의 위력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보는 힘을 키워야겠다. 세상을 보는 정확한 힘은 언론을 보는 힘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이 있다. 내년 미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다. 월남전 당시 해군장교로 참전했다가 잡혀 5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할아버지가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임을 의식한 월맹군이 석방시키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그대로 남아 종전 후 국민적 영웅으로 귀국했다.
귀국 당시 한 기자가 5년 넘게 감옥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예상을 뒤엎었다. 5년 동안 감방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은 가족도, 여자친구도, 맛난 음식도 아니고 '자유롭고 정직한 뉴스'라고 답했다. 자유로우면서 왜곡되지 않은 정직한 언론이 가장 그리웠다는 매케인의 고백을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동률(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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