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차려와 원산폭격, 소주를 사발에 돌려마시기, 추운 겨울날 팬티바람으로 교문 앞에 서 있기…. 대학이 신입생 환영회와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배와 후배가 위계질서에 따라 폭력을 행하고 당하며, 수치스러운 경험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인 줄도 모르고, 함께 비열해지는 줄도 모르고.
'3월 한 달은 새벽에 집합해서 매일 훈련을 받아야 하고, 머리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단정히 해야 하고, 학과 건물 안에서는 가방을 오른손으로 들어야 하고, 전화받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07학번 누구누구입니다."로 말해야 한다.'는 게 어느 대학의 체육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지시된 내용이었다.
결국 고3이라는 어려운 터널을 지나 원하던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이 그 학과에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대학교수인 그의 아버지는 "그곳은 작은 사회고, 적응 못하면 안된다."는 조언을 했지만,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마음껏 도서관에서 책도 읽을 수 있으리라는 대학생활에 대한 그 학생의 기대는 무너지고, 반쯤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외모와 가방을 드는 양식과 언어까지 규제하려는 이 방식은 위계질서와 엄격한 강제가 지배하는 감옥과 군대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방식이다. 그곳은 인간의 다양성을 고려하기보다는 감시, 통제를 통한 효율적인 관리가 더 중요한 덕목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말투와 동작 하나까지 힘을 가진 자, 혹은 전통의 논리에 따라 강요되고 반복된다면 학교는 더 이상 진리탐구의 장이 아니라, 거대한 감옥이나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
그 학생이 진학을 거부한 것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비인간적인 질서와 폭력을 구분할 줄 아는 예민한 감성과 '타자'가 자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생이 내년에 다른 학과를 지망할 때, 그 학과의 선배들 역시 어떻게 폭력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그때 이 학생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사회에, 폭력에 적응해 가야 할까? 아버지의 말씀처럼?
선행학습, 입시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고, 지식과 정보에 주눅 들고, 힘 있는 자들이 짠 질서 속에서 일상을 반복해야 하고, 사방에 밟고 올라가야 할 적으로 둘러싸인 시간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서 폭력에 길들여져 온 학생들에게는 가방을 오른손에 들어야 하고 말투를 교정하는 정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억눌러왔던 분노와 비열함을 분출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은 학생들이 강제와 폭력의 장면들을 재미있어 하고 추억이니, 전통이니,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대학뿐 아니라 친구를 혼내주기 위해 성폭행을 사주한 고등학생, 친구를 집단폭행하고 감금한 중학생, 그것이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로 내려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이지메나 왕따, 은따, 전따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그 잔혹함은 인간의 역사 속에 행한 모든 잔혹한 행위를 담고 있는 듯하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 사회가 학교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기보다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성공과 성장을 부추기는 한에는 우리는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폭력에 길들여진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한 대안이 산자연학교에서 얼핏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수업을 하기 싫은 아이는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허용을 한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텃밭을 가꾸는 일을 한다.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우면서도 아이들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시간마다 의논을 한다. 과정에 있기 때문에 결과는 아직 낙관할 수만은 없다. 다만 아이들과 나의 믿음을 믿을 뿐.
학교는 질서를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지켜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떤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보고 느끼는 나름의 눈이 있음을 믿어라. 그리고 질서는 더디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폭력에 찌들리지 않은 아이들의 영혼에서 새로운 문화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이다.
이은주(문화평론가·대구여성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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