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대입 '3불(不)정책'

"교육기회 균등 보장" "대학 경쟁력 확대"

대학 입시와 관련된 '3불(不)정책'이 교육정책 논란을 넘어 현실 분석과 정치철학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연말 대통령 선거 주자들에게 3불정책에 대한 입장을 요구함으로써 정치 이슈로 만들려는 의도까지 숨기지 않는다.

학생들로서는 대학입학전형에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 3가지를 금지하는 3불정책의 배경과 의미, 논란으로 떠오른 이유와 각 항목에 대한 찬반 논리 등을 넓게 이해한 뒤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불정책이 단순히 교육정책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3불정책이란

대학이 신입생을 뽑을 때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정책을 말한다. 고교등급제란 전국의 고등학교를 재학생 성적이나 대학 입학생 성적 등으로 평가해 학교별로 일정 등급을 부여한 뒤 입학 전형 때 지원자의 출신 학교 등급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기여입학제는 대학에 무상으로 기부하거나 대학 발전에 공로가 큰 사람의 후손을 시험 없이 혹은 대학 기준에 따라 입학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본고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학력고사처럼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문제로 치르는 대입 전형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대학이 계열별 혹은 모집단위별로 문제를 자체 출제하고 평가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을 말한다.

▶3불정책의 시작과 최근 논란의 배경 해석

3불정책과 관련된 입장은 논란의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나 첨예하게 대립된다. 유지론자들은 애초에 3불정책이 도입된 배경을 언급하며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폐지론자들은 시대 변화와 부작용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먼저 유지론자들은 3불정책이 사회적 합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의 3불정책과 이 정책이 표방하는 교육평등권이 국가권력에 의한 부당한 강요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당한 규범이라는 뜻이다. 또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기회의 균등을 보장할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국정브리핑 칼럼)

논란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의 낡고 고질적인 문제인 학벌 풍토가 작용한다는 분석도 깔려 있다. '대입은 '좋은 학벌'의 관문이다. 이래서 다들 대입에 목을 맨다. 소위 명문대를 나오면 많은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입에 목을 매는 것은 학생·학부모뿐 아니다. 대학들도 목을 맨다. 명문대일수록 더 그렇다. 왜 그럴까. 답은 뻔하다. 명문대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경쟁대학을 앞지르려는 것이다.'(신문 칼럼)

폐지론자들은 유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기회 균등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는 취지부터 흔든다. 사교육 수혜 능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현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3불정책으로 일반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의 공교육이 제대로 이룩되지 않는 한 높은 교육열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양질의 사교육과 외국 유학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의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는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서민 계층 자녀들은 이러한 사교육과 외국 유학의 수혜를 받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소득 재분배 기회, 혹은 사회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은 그만큼 제한되고 소득 분배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즉 서민들의 사교육비 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3불정책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가난의 대물림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신문 칼럼)

▶3불정책을 흔드는 대학의 의도

최근 3불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울대 일부 교수와 일부 사립대 총장들로부터 비롯됐다. 대학 관계자들이 폐지를 내세운 의도는 3불의 3가지마다 각각 제시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들은 그동안 법제에도 없는 3불정책에 묶여 학생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우수 인재를 뽑아 수월성과 다양성 교육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함에도 내신비율을 50% 이상 확대하라, 수능비율을 낮춰라, 논술 가이드라인을 지켜라 등 시시콜콜한 교육부 간섭에 시달렸다.'(신문 사설)

이에 뒤따르는 근거는 외국 대학들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이 한창이다. 평준화보다 수월성(秀越性)을 중시하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 골자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선 우수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일본 등에선 경쟁 원리를 도입해 학교·교원 평가를 강화하고,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다양한 학교들을 만들고 있다.'(신문 사설)

그러나 유지론자들은 대학 경쟁력 약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에 있다고 질책한다. 고교생들은 전체적으로 뛰어난데 그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뽑아 편하게 가르치고 명문을 유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 대학이 퇴보한다고 지적한다. '고교생들의 학업능력 성취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최상급이다. 이런 학생들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대학 입맛에 맞는 학생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신문 칼럼) '본고사, 고교등급제 등등 인지적 능력을 변별력 있게 측정하는 시험을 부활해서 어느 한 대학이나 일부 소수대학들이 우수학생을 독점해버리면 그 대학은 별 교육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니 게을러질 수밖에 없고 다른 대학들은 첫 출발점부터 뒤처져 있으니 경쟁할 의욕이 생기지 않게 마련이다.'(국정브리핑 칼럼)

▶3불정책 각각에 대한 찬반

고교등급제의 경우 선배들의 대학 입학 전후 성적이나 동료의 성적 등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는 건 일종의 연좌제라는 점에서도 반대가 강한 편이다. '고교내신등급제는 대입제도 시행 이후 허용된 사례가 없으나 2005학년도 수시 1학기 모집 등에서 서울의 여러 사립대학이 제도를 도입해 정책을 위반한 사례들이 있었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과학고, 외고 등 특목고들이 이미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벗어나 입시학원화한 마당에 고등학교 공교육에 파행을 초래하고 특정지역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금지되고 있다.'(국정브리핑 칼럼) 그러나 심각한 지역별·고교별 학력 격차가 존재하는 반면 내신 성적은 이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폭넓게 깔려 있다.

기여입학제의 경우 외국에서 보편화한 점, 국내 대학의 재정 여건이 좋지 못하다는 점 등이 주요한 도입 이유로 제기된다. '우리 대학 가운데는 한 해 등록금이 1천만 원을 넘어선 대학도 있다. 웬만큼 살림이 편 집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 대학 교육의 기회를 주고 제대로 된 실험실습실을 갖춰 탁상공론식의 과학교육을 면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 기여입학제의 목적이다.'(신문 사설) 대학들이 합리적인 기준을 정해 정원외로 선발하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도입했을 때 대상이 될 수 없는 대다수가 느낄 박탈감은 금지론의 주요 근거가 된다. '기여입학제를 아무리 세련되게 만들어도 기층 서민의 입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으로 비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본고사 도입에 대해서는 대학 선발의 자율성을 어느 선까지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한 사교육비의 주범이라는 비판은 본고사 도입과 금지 양쪽 모두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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