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28일 낮 12시 45분 제117호 무궁화 열차는 부산을 향해 서울에서 출발했다. 대구를 지나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는 승객 6백34명과 승무원 6명을 합쳐 6백40명이 타고 있었다. 오후 5시 30분쯤 시속 85㎞ 속도로 구포역 쪽으로 진입하던 열차는 갑자기 급제동과 함께 탈선하면서 기관차와 발전차, 5·6호 객차 등 4량이 잇달아 전복했다. 기관차는 침하된 철로 3m 아래로 그대로 내려앉았고 발전차는 철길 제방 왼편 3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으며 6호차는 중간 부분이 두 동강이 나는 등 사고열차는 휴지조각처럼 찌그러졌고 승객들의 신음소리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이 열차사고로 78명의 사망자와 19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기관사는 "사고지점 50m 전방에서 철로지반이 푹 꺼지는 것을 발견하고 급제동했으나 정차하지 못하고 그대로 달리다 탈선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는 건설사가 현장 부근에서 전력구 설치를 위해 지하 굴착공사를 벌이면서 지반강화 조치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발파에 의한 충격으로 지층의 균열이 확대되고 토사가 대량 유출되면서 지반이 침하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1899년 관립의학교 설립 ▶1941년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사망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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