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름짓기의 達人(달인)이다. 그들의 이름은 우리처럼 추상명사가 아니다. 대자연이나 구체적인 사건·사물 등에서 딴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아들', 자기 소유의 말이 미쳐버린 사람은 '미친 말', 동쪽에서 온 사람은 말 그대로 '동쪽에서 온 사람'이 이름이 돼버리는 식이다. '달과 함께 걷다' '푸른 천둥' 같은 자연의 내음을 물씬 풍기는 이름도 많고, 심지어는 '가기 싫다' '어디로 갈지 몰라' 같은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이름들도 많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름짓기에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호적상의 이름이 아니라 愛稱(애칭)에서다. 이를테면 인기 드라마 주인공들에게 애칭 붙이기가 유행인데 재치 넘치는 것들이 많다. '버럭범수' 니 ·'야동순재' 니· '까칠공주' 니 캐릭터의 특징을 절묘하게 살린 이름들이 재꺽재꺽 만들어진다. 톡톡 튀는 발상이 여간 재미있지 않다.
일반 대중들도 애칭 사용이 늘고 있다. 전자메일과 휴대전화용 이름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이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고, 수시로 바꿀 수도 있는 자유로움이 특장점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휴대전화 애칭이 화제로 올랐다. 좌중의 한 사람은 남편의 휴대전화 화면에 아내인 자신이 '마'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걸 보고 처음엔 세례명인 마리아인가보다 여겼지만 왠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여보, '마'가 뭐예요?" 그랬더니 남편 왈 "마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은근히 속상했던 그이는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얼른 '마'를 '중전'으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도 남편 휴대전화의 자기 호칭 '이교장'을 '황후'로 바꿔버렸노라고 털어놓았다. 모르긴 해도 남편이나 아내 몰래 휴대전화속 애칭이 바꿔치기 된 경우가 꽤 많을듯하다.
휴대전화 애칭으로는 궁중식 호칭이 인기다. 부모들은 아들딸의 휴대전화에 자신을 '어마마마', '아바마마'로 올려놓고, 자식들은 또 부모의 휴대전화에 '공주'니 '왕자'를 올려놓는다. 비록 현실은 초라하고 고단할지라도 휴대전화 액정화면 속에서나마 환상적인 존재로 살고 싶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번쯤은 아내나 남편, 또는 연인의 휴대전화 속 자신이 어떤 이름으로 돼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마음에 안 든다면 즉시 세상 최고의 이름으로 바꿀 일이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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