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대형마트라는 다소 낯선 형태의 소매점이 국내에 처음 등장한 이후 유통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대형마트의 돌풍은 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구시내에 이미 17개의 대형마트가 입점해 있고 3, 4개 점포가 추가로 진출할 예정이다. 대구는 대형마트 점포수뿐만 아니라 판매액에서도 서울, 부산 다음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판매액의 증가율에서도 전국 최고수준이다. 이만하면 대구는 가히 전국 대형마트의 최고 격전장이자 황금시장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는 대형마트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형마트의 증가를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면 대형마트 1개 점포가 들어설 경우 주변 재래시장 7개, 중소유통업체 350개 점포의 매출액이 잠식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혹자는 대형마트 진입이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 진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캐셔 등 비정규직 인력일 뿐이다. 오히려 기존 중소유통업체나 재래시장 종사자들의 도산으로 인해 고용불안이 심화된다. 여기에 대형마트 대부분이 매출액의 80% 정도를 지역에서 소비하거나 예치하지 않고 역외로 이전시키는 것으로 추정되어 지역부(地域富)의 유출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또한 중앙집중식 대량구매와 통합배송 시스템으로 인해 지역 생산품의 매입률이 10%대에 머물러 지역 기업이나 농가에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구는 타지역에 비해 대형마트들이 도심에 진출해 있는 경우가 많아 주변 교통 혼잡 등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까지 발생시킨다. 최근 대구도심에 세워지고 있는 주상복합건물들의 상가시설에도 대형마트가 경쟁적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이러한 부작용은 비단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전국의 각 지자체들은 대형마트의 지역 진출을 막기 위한 다양한 규제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구단위 계획에서 대형마트의 진입 자체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거나 국공유재산에 대한 매각을 불허하여 입점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으며, 교통영향평가 등 각종 인허가의 심의를 강화하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대형마트에 대한 폐해를 막기 위해 기존에 자유롭게 허용되던 제2종 주거지역(준주거지역)과 시가화조정구역, 교외의 규제공백지역 등에서의 설립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안을 개정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차원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대구시에서도 대형마트 진출에 따른 지역 상권붕괴와 재래시장 및 영세중소상인들의 폐업 등 여러 문제점을 이미 인식하고, 대비책 마련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대구의 문제점들은 대형마트 자체의 원인보다는 인구나 상권규모에 비해 너무 난립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문제해결의 방향이 기존의 대형마트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보다는 새로운 대형마트의 도심 진출 억제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구시가 현시점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은 일본이나 타지자체처럼 조례를 통해 준주거지역에 추가입점을 제한하거나 4차 순환선 내에는 대형마트가 진출하지 못하도록 환경,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 이와 함께 중소상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도심 외곽지역에 관련 소매점들을 집적(集積)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실제 미국의 경우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에 대형소매점들을 집적화시킨 파워센터가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매장면적이나 상품 종류를 확대시켜 대형마트를 도심 외곽지로 이전하고 있다. 대구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4차 순환선 밖에 카테고리킬러(Category killer)나 대형마트 등을 한곳에 모아 복합 쇼핑몰 단지를 조성한다면 중소상인과 대형마트가 상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소비자, 재래시장상인과 중소유통업체, 그리고 대형마트까지 모두 공생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이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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