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아빠는 왜 못 걸어?'라고 친구들이 물으면 뭐하고 답하라 했지?"
"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지만 휠체어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친구들이 아빠를 앉은뱅이 병신이라고 놀리면 뭐라고 하라 했지?"
"세상에는 앉아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걷지 못할 뿐 다른 아빠랑 똑같다고."
혹시 우리 아이들, 다리 병신 아빠 때문에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매번 묻습니다. 물을 때마다 씩씩하게 답하는 아들(6)이 이제는 저를 위로합니다. 어제는 문득 이러더군요. "근데 아빠. 이젠 이런 것 안 물어도 돼. 혼자서도 답할 수 있어. 친구들이 철없어 그런 것 나도 다 안다니까."
참 못난 아비지요. 잘 걷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아들에게 아빠에 대해 변명이나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빠의 장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겐 이런 식의 '주입식 교육'이 꼭 필요하니까요. 아빠를 믿고 인정해야만 아들이 받을 상처도 작아지더군요. 제가 입원해 있는 7개월 동안 서울 고모집에서 생활한 아들은 한때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통 말이 없었고 어둡고…. 아이에겐 의지할 언덕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아빠의 존재가 부끄러움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아이는 오늘도 아빠를 놀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힘겨운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사연을 얘기할까요. '장애'란 단어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제게 시련이 닥쳐 온 것은 지난해 5월이었습니다. 둘째 딸(2)을 안고 1m도 안 되는 집 앞 난간에서 봄볕을 쬐고 있었지요. 그 따뜻했던 햇살. 갑자기 현기증에 몸의 중심을 잃은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는 두개골이 함몰됐고, 저는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인이 돼 버렸지요.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한 차례 뇌수술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 찰나가 기억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병원에서 둘째를 키우며 제 병 수발을 해야 했습니다. 첫째랑은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지요. 밀린 병원비는 저와 제 아내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고 결국 우린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버렸지요. 아이들, 아내에게 전 큰 죄인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부보조금으로 월세와 병원비를 내며 악착같이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멋진 결혼식을 올려주겠다.'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채 불구가 돼 버린 이 못난 남편에게 제 아내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27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영훈(가명·36) 씨는 재활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누워있었다. 그는 "설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그의 눈빛에선 삶의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이겨내야 했다. 50만 원으로 가족 모두의 생계를 잇고 있다는 그는 현실과 의지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하고 있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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