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시선을 끌었던 29년차 배우 정한용. 극중에서는 주인공 장준혁(김영민 분)의 장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주연보다도 더 관심을 끄는 조연이었다. 브라운관을 통해 비쳐지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그의 대사와 눈빛 연기는 압권이다. 배우로서 29년의 세월동안 시청자 가슴에 남아있는 이유가 있다면 '보통사람'의 캐릭터를 강렬하지도 넘치지도 않을 정도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7시 30분, KBS 별관 로비 . '하늘만큼 땅만큼' 녹화를 끝낸 그는 극중 인물 옷차림 그대로 반갑게 손을 내민다.
식당에 앉아 지난 1982년에 출연한 드라마 '보통사람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배우가 된 것도 순전히 친구 때문이란다. "1979년 동양방송 23기 탤런트로 합격했는데, 친구가 시험 한번 보자는 거야. 친구 놈이 잘생겼었거든. 근데 그 친구는 떨어지고 나만 붙었어."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도 방송국에 가지 않았다. "생각해봐. 70년대 만해도 배우하면 다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때만 해도 내가 가야할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쭉 방송국을 안 나갔어." 컬러TV 시대를 맞으면서 방송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 거야. 이제부터 드라마는 잘생긴 사람만 나오는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다룬 드라마들이 앞으로 대세 일거라고 하잖아. 당시 나하고 같이 출연한 배우들 중에 나만 좀 보통사람 이미지잖아. 같이 출연한 강석우 봐. 얼마나 잘생겼어."
'보통사람들'에 출연한 정한용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살림을 혼자 다 할 것 같은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얼마나 반응이 좋았으면 여자들이 시집가고 싶은 남자순위 1위이었다니까."고 말하며 껄껄 웃는다. 이 시절, 자신의 보통사람들의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게 되자 삶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미지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한용이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평범한 일반인 이미지를 넘어선 강렬한 카리스마를 담아낸다. 그가 국회의원에서 다시 배우 정한용으로 돌아왔을 때 맡은 첫 역할이 '천국의 계단'에서 사채업자 한필수 역이였다.
전성기 때의 평범하면서도 친근한 서민 이미지와는 딴 판인 캐릭터. "국회의원을 하고 나서 다시 드라마를 하려니까 왠지 서먹했어. 시청자들한테 더 가깝게 가야하는데, 좋은 방법이 없더라고.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완전히 망가지기로 했지. 이전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말이야."
그는 고량주 한 잔을 툭 털어넣으면서 솔직하게 말을 이어간다. "정말 많은 분들이 날 사랑해주셨는데 정치한다고 시청자 곁을 떠났었고, 정치인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보여 드렸어야 하는데 좋은 모습으로 끝을 맺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들이 회피하고 싫어하는 역할을 맡고 망가졌는데, 시청자들이 더 좋아해 주셔서 고마울 뿐이지."
정치인으로서 정치권력의 힘도 느껴보고 쓴 잔도 마셔본 그는 딱 잘라 말한다. "앞으로 정치는 안해. 연예인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로 막대하지. 선거는 캠페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운영하는 가에 따라서 달라져. 때문에 정치는 연예인들의 호소력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요."
정한용은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선거캠페인 공부를 했다. 이제는 배우로 돌아온 정한용은 정치에 가담할 생각은 없지만 해야 될 일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한용의 말솜씨는 보통사람 이상이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한마디로 박학다식한 배우다. 방송국에서 식당으로 옮기고 음식을 시키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정치, 경제, 인문학 얘기가 오고가더니 잠시 틈을 타서는 우주와 빛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소문난 대로 학구파 정한용이라 것을 곁에서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은 가정이야." 그는 라디오, 방송드라마 등 출연 프로그램이 5개가 넘는다. "쉬지 않고 배우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게 좋잖아." 지난 1983년 EBS 앞 잔디밭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친근한 형처럼 배우가 되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던 그.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형처럼 보통사람이 제일 잘 어울리는 배우다.
대경대학 연예매니지먼트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